갤러리 예온 이름의 탄생 비화
예전 TV에서 한 과학자가 실험을 했다. 한쪽 물에는 ‘사랑해’라는 말을, 다른 쪽 물에는 ‘미워해’라는 말을 꾸준히 한 후 얼려 보았더니, ‘사랑해’라고 말한 쪽의 얼음 결정이 훨씬 예쁘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일본에서는 어령(語靈)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말에 깃든 귀신이라는 이 존재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는다. 단 사람이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그대로 실현시켜준다고 한다.
위의 두 이야기는 말의 힘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리를 의미한다. 소리에서 나오는 파장과 에너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힘은 대상을 물리적 감성적으로 변화시킨다. 나쁜 말은 대상을 나쁘게, 좋은 말은 대상을 좋게 변화시킨다. 아이가 태어나면 작명소에서 좋은 이름을 짓는 이유도 이와 같다. 평생 불릴 이름이기 때문이다.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공간도 좋은 이름을 지어야 기운이 흥한다. 좋은 파장은 공간을 흥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정체성을 명확히 표현하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
처음 갤러리 오픈을 준비하면서 이름을 무얼로 할까 고민했다. 흔한 이름은 싫었다. 그러면서도 부르기 쉽고 의미가 함뿍 담긴 이름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작명의 순간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았다. 이름도 인연이 닿아야 한다지 않는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길을 걷다가 한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예술적 온도’
모든 일은 온도가 맞아야 한다. 온도의 사전적 의미는 차고 뜨거운 정도를 의미하지만, 더 확장된 의미로, 임의로 규정한 두 개의 것이 가지고 있는 차이를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둘 사이에 생각하고 있는 사고의 기준이 너무 다르면 우리는 생각의 온도차가 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온도차는 모든 분야에서 적용된다. 각자의 삶은 모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온도차는 있다. 살면서 접해 온 환경적 요인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살면서 전혀 예술적 분야를 접할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고, 아티스트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다. 이렇게 예술적 온도차가 많이 나면 공통의 주제로 이야기 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그런데 예술을 많이 접하지 못하였을 때 우리는 감성적 고갈을 겪는다. 감성적 고갈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삶의 피폐함은 예술을 만나기 전까지는 잘 모른다. 그러다가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본다던지, 음악회에 가서 음악을 감상한다던지 그림이나 사진, 악기 등을 배우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기존 삶에 대한 상대적 피폐함을 느낀다. 그러한 인식은 일시적일 수도 지속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예술적 부분을 채워나감으로써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만족도 역시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갤러리를 찾는 이들과의 예술적 온도를 맞춰가야겠다는 의미로 예술적 온도의 줄임말 <예온>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런 온도를 맞추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일반인들을 위한 예술아카데미를 준비했다. 여건이 안 돼서 혹은 삶이 바빠서 교육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전문적 교육과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예술적 온도를 맞춰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과 적절한 온도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맨 처음 <예술적 온도>라는 이름의 힌트는 스타커플 비틀스의 존 레논과 오노 요코에게서 얻었다. 오노 요코는 존레논과의 만남 이후 온갖 악의적인 비난들을 감수해야 했는데, 존레논은 그런 그녀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사람들 눈에 요코가 어떻게 보이든 나한테는 최고의 여성이다. 비틀스를 시작할 때부터 내 주변에 예쁜 여자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는 없었다. 난 늘 내 음악을 이해하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꿈을 꿔왔다.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말이다.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존 레논에게 오노 요코는 영혼의 정신세계를 함께 할 수 있는 여자였을 것이다. 그런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정신적 감응은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동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예온>이라는 이름을 통해 이러한 동행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러한 예술적 영혼이 하나둘 모여드는 공간이 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과의 예술적 온도를 맞추기를 기대해본다.
당신의 예술적 온도는 얼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