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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한국의 죽은 시인의 사회를 꿈꾸다

콩나물뮤지컬제작꿈의학교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낸 콜라보레이션

by 혜류 신유안




오 캡틴 마이 캡틴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에서 나오는 명대사이다. 입시 위주의 미국 명문 아카데미에 한 신입 영어교사가 부임한다. 그곳은 학생들에게 입시와 미래만을 보고 살도록 가르치는 곳이다. 새로 부임한 영어교사 키팅선생님은 첫 시간부터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외친다. 삶의 모든 순간은 지나 나기 마련이며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유한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이다. 키팅 선생님은 외친다.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에만 길들여 있던 아이들은 이런 열린 교육을 접하고 당황한다. 수동적이고 받아들이기만 했던 아이들은 그의 교육방식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아이는 시를 낭송하고, 모임을 만들고 그들은 비로소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여러분 나름의 길을 걸어라.

방향과 방법은 마음대로 선택해라

그것이 자랑스럽던, 바보 같던, 걸어 보아라.



영화가 나온 지 어언 3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파면되는 키팅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책상 위로 한 명씩 올라간다. 그리고 외친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이 영화에서 우리는 지금의 교육과정을 본다. 많이 변화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의 교육과정 역시 주입식 교육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갤러리 예온에서 한국의 키팅 선생님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리딩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콩나물뮤지컬제작 꿈의학교



경기도에는 꿈의 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마을교육공동체 프로그램으로 학생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도전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그중 백미인 곳이 한 곳 있는데, 바로 콩나물뮤지컬극단 꿈의학교가 그곳이다.


이미 3년째 움직이고 있는 이곳은 매년 말도 안 되는 뮤지컬들을 만들어낸다.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아이들이 극본을 쓰고, 작곡과 작사를 해내고, 녹음을 하고 배우를 하고 노래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퀄리티가 전혀 낮지 않다는 점이다.


이 (죽은 시인의) 사회의 중심에는 한국의 키팅 선생님 김아영 선생님이 있다. 본업은 작곡가이지만 몇 해 전부터 콩나물뮤지컬극단 꿈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그녀의 역할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 키팅 선생님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지켜봐 줄 뿐이다. 하지만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더없이 많은 성장을 했다. 처음 학교에 들어왔던 아이들은 모든 일을 질문에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이 났다고 한다. “선생님 화장실 가도 돼요?” “선생님 이거 해도 돼요?”

하지만 모든 것들을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고 아이들의 질문 수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두발로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곳 갤러리에서 1년간의 성과가 담긴 공연 전 뮤지컬 리딩 공연을 진행했다. 갤러리에서 무슨 뮤지컬 리딩 공연인가 하겠지만 다양한 문화예술의 콜라보레이션을 목표로 했던 공간인지라 우리는 흔쾌히 공연을 수락했다.




물론 공간이 좁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좁은 공간이 더더욱 관객과 배우들의 물리적 심리적 관계를 좁혀주었다. 배우들과 코러스는 대략 20여명, 10여명의 관객. 관객들보다 배우들이 더 많았던 공연이었지만 원 취지가 그러했다. 꿈의학교와 마을교육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고 배우들은 서로의 열기를 느끼며 공연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아담한 공간 사이로 아이들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김아영 선생님의 손 끝에 맞춰 아이들은 경험했던 그리고 경험할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하모니는 비어있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안드로메다 49번지>라는 이번 뮤지컬의 스토리 또한 꽤나 재미있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안드로메다 49번지라는 행성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예를 들면 매번 회사에서 깨지는 소시민은 그곳에서 독재자로 살고 있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 보면서 느끼는 인생의 철학을 아이들은 어른스럽게 또는 아이스럽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갤러리에서는 2시간 동안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향한 시선이 흐르고 있었다.




뮤지컬이 끝나고도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갤러리에 감도는 따스한 열기와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따뜻함이 공간 너머 뿜어져 나왔다. 마침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삶을 연주하는 아이들은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처럼 세상에 흩뿌려졌다.



갤러리. 뮤지컬. 그리고 아이들. 어느 것 하나 맞아떨어지는 요소가 없을 듯했지만 그들은 교묘하게 어울리며 예술을 만들어내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런 공간 대관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올 2월 공연을 꼭 가보겠노라고 약속했다.



우리의 갤러리는 그렇게 또 한 발짝 나아가고 있었다.







운영하는 갤러리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복합적이고 아름다운 예술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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