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가족사진을 찍다
우리 갤러리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스튜디오가 붙어있다. 나는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종종 가진다. 사진 작업을 하고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찍는다. 그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매달 가족사진 찍기'이다.
20대, 매일 밤 술잔을 따르며 개똥철학을 논했던 그때.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 내가 가장 몰랐던 사실은 추억의 기록이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매우 싫어했던 나는 항상 카메라 프레임에 빗겨서 있었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나는 그렇게 날려버렸다.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막걸리를 마시며 밀레니엄 세대를 그리던 아름다웠던 풍경, 웃고 혹은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추억들은 이제 머릿속에만 어렴풋이 존재한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당시의 시공간과는 한 걸음씩 멀어진다. 멀어지니 어렴풋한 아지랑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까마득히 보이지 않을 만큼 걸어가 있겠지. 그래서 매일매일 아름다웠던 기억들과 조금씩 이별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의 내 모습도 미래에는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모습들을 남겨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들었다. 내 모습, 가족, 그리고 주변의 모습들...
그래서 가족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무도 찍어줄 사람은 없다. 카메라 삼각대를 설치하고 우리만의 시간을 가질 뿐이었다. 가족사진에서 얻고자 함은 가족 간의 사랑이고, 추억이다. 그것은 오래돼서 늘어진 테이프이나, 흠집이 많아 튀는 LP판처럼 언젠가 우리에게 아날로그적인 기억을 선사할 것이다.
보통 1년에 한 번 찍을까 말까 한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선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옷을 곱게 차려입고 화장도 기갈나게 해야 하고, 뒷 배경도 고풍스러운 의자와 고급스러운 커튼이 쳐져 있는 스튜디오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사진 한번 찍는 게 일이다.
가족사진의 본질은 지금의 관계와 진실된 모습일뿐이다
하지만 매달 찍는 가족사진에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옷을 차려입을 필요도 없었다. 단지 그날 입고 간 옷으로 평소의 모습을 찍는다. 배경도 일반적인 가족 사친처럼 중후할 필요가 없다. 왜 가족사진은 항상 중후하고 행복해 보여야 하는가. 그것은 가족사진에 담긴 대단한 편견일지도 모른다.
매달 찍는 가족사진에서 중요한 점은 예쁘고 잘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진실되게 나오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 사진들은 우리의 관계를 설정할 뿐이다.
우리 가족사진에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어느 달엔 고양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한다. 만약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이는 사진의 한편에서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요즘엔 주변에서도 종종 이렇게 촬영하고 싶다는 이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들에게 나는 말한다. 오셔서 찍어도 됩니다. 하지만 그냥 집에서 찍으셔도 돼요. 대신 한 달에 한 번쯤은 가족들끼리 맛있게 밥도 먹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기회를 가지세요.
추억은 사진이라는 징검다리로 연결 연결된다. 우리가 나이를 먹고 앞 자릿수가 점점 많아질 때 가장 큰 보물들은 바로 지금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