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메모
가을의 깊이가 점점 더해간다. 그만큼 해는 짧아지고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또 지나간다. 그동안 아팠던 아이가 퇴원했다. 아이를 가슴 한가득 안고 외투로 아이의 등을 옴푹 가린다. 쌔근쌔근 아이의 숨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숨 끝으로 따뜻한 온기가 목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 한다.
가을바람이 강하게 불어댄다. 머리카락이 샤르락 거리며 날린다. 주변의 해바라기들이 후우~하는 소리를 내며 바람을 타고 흔들린다. 해바라기들은 해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본인들의 이름에 대해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물론 인간이 지어준 이름이긴 하지만.
해바라기들 사이로 여인은 아이를 안고 걸어오고 있다. 저벅저벅. 그녀의 뒤에는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며 하루의 마감을 알리고 있다. 태양의 이글거림은 석양으로 바뀌고, 석양은 그녀와 아이를 따듯한 노란빛으로 토닥토닥 감싸주고 있다.
엄마는 삶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지갔다. 그간의 힘든 일들은 분명 비극이었을지 모르나 이러한 비극은 모여 지금의 삶을 형성했고, 또 앞으로 나갈 원동력을 만들고 있으리라. 그리고 이 아이가 있으니 그 무엇이 두려울까.
그래서 엄마는 영웅이다. 석양을 뒤로 한채 긴 그림자를 내뿜는 한 명의 영웅.
로맨틱 히어로!
저는 포토그래퍼입니다. 저의 작업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시각화 하는 과정들입니다.
상업사진도 개인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에 작은 영혼을 담습니다.
[사진가의 메모]는 사진을 찍고 그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