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항의 휴일 아침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뭔가 특별할 것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이상하게도 눈이 일찍 떠졌다. 축제의 끝은 항상 허탈하다. 크리스마스가 내게 더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지만 축제는 축제였다. 무얼 할까 하는 생각이 어디를 나가볼까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대명항이었다. 카메라와 자동차 키를 들고 아무 생각 없이 현관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거울을 보았다. 부은 눈을 하고 부스스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2015년의 내 모습이었다. 2016년을 맞이하기 위해선 조금 더 고요해질 필요가 있었다. 생각의 정리는 자동차 시동을 걸면서 파편처럼 튀었다. 그렇게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대명항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뜨끈한 시트와 히터로 무장한 차 안에서 바라보는 하얀 대명항은 아름다웠다. 라디오에서는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가 막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까지만 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대명항을 관찰했다. 달이 떠있었다. 아침 7시 20분. 아직 해보다는 달이 친숙한 겨울이었다. 시동을 끄고 내리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장비를 꺼내고 서서히 포구로 들어섰다.
아무도 찍지 않았던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마 아무도 찍지 않았을 사진일 것이다. 인터넷을 모조리 검색해 보아도 대명항의 휴일 아침을 담은 사진은 거의 없다. 대명항의 낮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산시장이 있기 때문에 가족단위나 횟감을 고르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그리고 저녁은 멋진 일몰이 지기에 사진가들이 종종 사진을 찍어 올린다. 하지만 아침은 그 누구도 없다.
보통 풍경을 좋아하는 사진가들은 멋진 풍경을 찾아 헤맨다.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 눈에 다 담기 힘든 자연의 거대한 풍경, 아찔하게 떨어지는 폭포수 등. 하지만 나는 멋지지 않은 풍경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멋지지 않은 풍경 속에서 정말 멋진 것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멋지지 않은 풍경 속에는 정말 멋진 것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명항의 휴일 아침은 모든 움직임이 멈춘듯하다. 움직이는 거라곤 카메라를 든 내 발걸음과 갈매기뿐.
고요하다. 세상이 이리 고요할까 싶을 정도로 고요하다. 한 번씩 들릴 듯 말듯 들려오는 물길 소리만 귓전을 때린다. 배들도 조금은 쉬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들 그렇게 조금은 쉬어야 한다.
<대명항의 휴일 아침 1>은 녹슬고 거대한 닻이 사진의 1/3을 차지하며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닻에는 배가 묶여있다. 고요함과 이 역동적 구도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거대한 닻을 배치함으로써 적막감과 함께 아침의 힘을 같이 표현하고 싶었다. 밝아오는 아침은 고요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두 번째 사진 <대명항의 휴일 아침 2>은 사실적으로 그때 상황을 보여준다. 희미한 붉은 하늘과 가로등 그리고 어제 내린 눈의 흔적. 켜켜이 걸려있는 선들.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다. 하나하나의 요소는 사실 사진에 담기에는 그리 예쁜 요소들이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합의 힘은 강하다. 모든 것들은 모여 이 풍경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 풍경에는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진에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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