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묻다

사진 읽기-아무도 조명하지 않는 보통의 것을 담다

by 감성수집가




시장길.합천.2016





길을 찍어보자.

갑작스레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생각이 든 이상 찍어야 할 것 같았다.


단 보통의 길을 찍고 싶었다. 아무도 찍어주지 않는 보통의 길. 보통 사진가들은 대단한 명소를 찾아가 사진을 남기곤 한다. 물안개가 가득 피어오르는 새벽의 절경이라던지, 진빨간 노을이 병풍처럼 깔려있는 저녁의 산이라던지, 머리통만 한 붉은 해가 막 태동하는 아침의 바다라던지.


이러한 명소를 찍는다는 건 흡사 대통령이나 연예인을 찍는 것과 같다. 원래 화려하고 훌륭한 것을 사각 프레임에 담는 행위이다. 내가 옆에서 보아온 바로는 그렇게 풍경 명소를 찾아다니며 촬영을 하시는 분들은 레이싱걸이나 모델 촬영도 즐겨하시는 듯하다. 아마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이건 순전히 취향의 문제이다. 나는 초반 사진 생활 몇 년을 그리 보내고 약간의 환멸을 느꼈다. 원래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담는다는 건 이 세상에 너무 흔하지 않은가. 내 카메라가 단순한 복사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하고 있으니 굳이 한 부분을 채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무언가를 찍고 싶었다. 아마 원초적으로 내가 보통사람인지라 그러한 욕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몇 년간 보통의 무언가를 그럴 듯하게 찍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아. 이래서 우리는 보통의 것들을 찍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굉장한 흥미를 자아냈다. 조금 더 세상을 자세하게 보게 되었고, 보통의 것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세상의 대부분은 보통의 것이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보통들은 쉽사리 조명받지 못한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꽃이 되지 못하는 김춘수의 <꽃>처럼. 하지만 그는 이미 꽃이었다. 그걸 발견해 내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잘못일 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도 모두 보통사람이지만 한 송이의 꽃들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해서 꽃이 아닌 것은 아니다. 물론 조명받는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현재 <길>이라는 주제로 촬영을 하고 있다. 이 길들은 훌륭한 작가들이 담아냈던 수려한 길들은 아니다. 그 누구도 담지 않았을 태초의 길이며, 기록에 남지 않았던 무명의 길들일 것이다. 이 길에서 나는 보통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본다.


<시장길. 2016>이라는 작품은 경남 합천의 가장 조그만 시골마을의 아침장이 열리기 전의 모습을 담았다. 아침의 향기가 고요하게 차오른 시장길은 사진을 찍고 얼마 후 북적이는 사람들로 붐빈다. 태동하기 바로 전의 길에는 그곳 사람들의 기운이 담겨있다.


<인생길. 2016>이라는 작품은 예산 수덕사를 올라가면서 담았는데, 길에는 수많은 나무 그림자들이 즐비하고 있다. 제멋대로 가지들의 그림자들이 길을 수놓고 있다. 이는 얼마나 우리 삶과 닮았는가. 많은 시련이 지속적으로 걸쳐있는 그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길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길은 삶의 모습이다.

길 프로젝트에는 사람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생은 항상 홀로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삶은 길 위에서 길을 묻는 구도의 과정이다.

걸으면서 생각해야 하고 달리면서 행동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이 길에서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







길4(서).jpg 암자올라가는길.합천.2016





길5(서).jpg 길위에서.합천.2016





길7 공주마곡사(서,리).jpg 꺽인길.공주.2016





길8(서,리).jpg 인생길.예산.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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