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이 없던 시절, 그 돈은 생명이었습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추석 명절이다. 추석 명절을 준비한다고 모두들 바빴다. 시내에 나가 제사상에 차릴 물건도 사 오고, 방앗간에 가서 떡도 해야 하고 온 동네가 분주했다. 추석 명절은 설 명절만큼 아이들이 기다리는 날이었다. 그때는 명절 때만 새 신발과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늘 해어지고 색상도 우중충한 옷을 입고 지내는 아이들에게 명절만큼 기다려지는 날도 없었다.
추석 이틀 전날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 나는 간장병으로 쓰는 크고 긴 정종병을 들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어머니는 내 바로 아래 여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있었다. 시장 가는 길은 골목길로 쭉 이어져 있었다. 다른 넓은 길도 있었지만 지름길이라 늘 그리로 다녔다. 내가 앞장서서 걸어서 가고 어머니가 뒤에서 따라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어이쿠!”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뒤로하고 쳐다보니 서너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쏜살같이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도둑놈 잡아라!”
“도둑놈 잡아라!”
어머니는 연신 ‘도둑놈 잡아라’고 소리치시면서 사람들 뒤를 쫓아가셨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냥 아무 소리도 없이 그냥 어머니 뒤만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무슨 일인가 몰랐다. 나는 나중에야 사람들이 어머니 지갑을 빼앗아 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런 것을 처음 보았다.
여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손을 뒤로해서 손지갑을 쥐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뒤에서 지갑을 빼앗아서 도망간 것이었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여기 조금 전에 어떤 이상한 사람들 도망가는 것을 못 봤소?”
“못 봤는데.”
“왜요?”
“지갑을 소매치기당했어요.”
“아이고 우짜겠노. 쓰리(소매치기)당했는가 봬”
사람들은 쯧쯧 안 됐다고 혀를 찰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옆에서 그냥 가만히 정종병만 들고 물끄러미 어머니만 쳐다보았다. 길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아도 누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지갑에는 추석 명절을 쐬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국제 시장에 가서 지게를 지고 한 푼 두 푼 모은 돈이었다.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또 집에 돌아가서 이야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번에 큰일이 일어날 게 뻔했다.
엄마는 다시 집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아버지 모르게 이웃집에서 돈을 빌리셨다.
그리고 다시 시장을 보러 내려왔다. 골목길로 가지 않았다. 돌아서 가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로 걸어가셨다. 고기도 사고, 나물도 사고, 튀김 거리며 이것저것을 사셨다.
그래도 추석 명절이라 아이들 옷이 생각나셨던 모양이었다. 옷 가게에서 옷을 한참이나 고르셨다. 그때는 대부분 지금처럼 몸에 꼭 맞는 옷이 아니라 조금은 치수가 큰 옷을 입히셨다. 그래야만 오래 입기 때문이었다. 소매가 길면 접어서 입히면 되고, 바지도 접어서 입으면 되었다. 등에 업힌 여동생 옷도 하나 사셨다. 예쁘고 빨간 비닐 구두도 사셨다.
다행히도 마침 아버지는 그때 서울에 일하러 가셔서 명절을 지내고 오신다고 했다. 어머니는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리셔서 아버지에게 보낼 가족사진을 찍으셨다. 여동생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여동생이 사진관 분위기에 놀라서 울자 사진관 아저씨는 종이돈 한 장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자 울음을 그치고 사진사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불이 번쩍 하고 사진이 찍혔다. 동생 얼굴은 여전히 겁먹은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짐을 머리에 이고 산을 오르셨다. 내가 든 큰 정종병에는 간장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무거웠던지 가다가 여러 번 쉬어야만 했다. 잘 못 하다가 돌에 부딪히는 날에는 큰 일 나기 때문에 조심해야만 했다. 큰 바위가 있는 동구 밖에서 어머니는 잠시 쉬셨다. 어머니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추석 명절날 아침. 제사를 지낸 아이들이 바깥으로 나왔다. 어제까지 입고 입던 옷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모두들 새 옷을 입고 있었다. 신발도 고무신 대신 새 운동화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그 옷이 새로 산 추석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 옷에서는 새 옷 냄새가 났다, 운동화도 새로 산 운동화였다. 빨리 추석날에 입고 싶어서 얼마나 애가 탔을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친척들에게 받았다면서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보였다. 손에는 고구마튀김을 쥐고 있었고, 한 입 가득 문채로 우물거렸다. 아이들은 조금 있으면 동네 구멍가게나 산 아래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화약총이나 폭음탄(불을 붙여서 던지는 화약 종류)을 살 것이다. 그리고 밤새도록 놀러 다닐 것이다.
아이들은 추석 명절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추석 때 산 옷을 입고 다녔다. 나중에는 때에 절어서 빨래를 해야 할 때까지 입고 다녔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대부분 형들이나 언니들이 입던 옷을 대 물림 해서 입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집에서 얻어 입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할머니는 나에게 하얀색 바탕에 줄무늬가 있는 조끼를 만들어서 입혀 주셨다. 집에서 손 바느질을 해서 입는 옷이 많았다. 큰 바지도 줄여서 입히고, 어머니는 저녁이 되면 호롱불 밑에서 떨어진 양말이나 바지 엉덩이를 깁는 일이 일과였다. 떨어진 무릎은 토끼 얼굴이나 다른 모양으로 천을 대고 기우셨다.
어머니는 그 후로 시장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그 길로는 절대 다니지 않으셨다. 학교 바로 밑에 파출소가 있었다. 우리 동네보다 훨씬 잘 사는 동네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잘 사는 동네에 파출소가 있을까? 산동네에는 파출소가 없다. 도둑도 없다. 집에는 대문도 없다. 그냥 물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이고 방이었다. 가져갈 물건도 없었다. 할머니가 쓰시는 놋쇠로 된 요강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내에 있는 집은 낮에도 대문을 꼭 꼭 걸어 잠그고 살았다. 도둑이 많다고 했다. 나는 도둑이 없고 소매치기가 없는 산동네가 좋았다.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걱정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밤만 되면 산 아내 동네에는 야경꾼 아저씨들이 ‘딱딱’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추석 명절날 소매치기당한 일은 엄마와 나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오랫동안 머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