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운동화가 신고 싶어서 쓰레기 더미를 뒤졌습니다.
아이들끼리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달리기 시합이 벌어졌다.
나는 다른 것은 잘 못해도 달리기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학교 체육 시간에도 달리기를 하면 항상 일등이었다. 운동회 때 달리기에서 일등을 했는데 그때 받은 ‘1등’이라고 도장이 찍힌 공책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작대기로 땅에 길게 선을 그어 놓고 출발 준비를 하였다. 옆에서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동네 꼬마들도 달리기 구경을 한다고 길 옆에서 목을 길게 빼고 구경을 했다.
“준비, 땅!”
“와!”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확하게 ‘땅!’이라는 소리와 동시에 앞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이에 뒤질세라 다른 아이들도 같이 달렸다. 달리기는 동네 가장자리를 돌아서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주 달리기를 했기 때문에 어디를 돌아서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앞에서 달렸다. 친구들과 몇 걸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이대로만 계속 뛰면 오늘도 일등일 것 같았다.
“어?”
그때였다 발이 미끄러지더니 발에서 고무신이 훌러덩 하고 벗겨져 버렸다. 아이들과 노느라고 발이 땀에 젖어 있었는데 고무신이 그만 미끄러져 버린 것이다.
고무신을 찾아서 제대로 신는 사이 아이들이 우르르하고 앞으로 뛰어가 버렸다. 몇 발자국만 더 뛰어가면 일등인데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허망한 생각에 신발을 벗어 보니 발은 땀과 먼지로 시커멓게 되어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무신만 땅바닥에 두드리며 앉았다.
그때 병수가 웃으면서 발을 내밀었다. 병수의 발에는 파란 ‘비닐 신발’이 신겨져 있었다. 어제 어머니가 시장에 가셨다가 새로 사 오신 것이라고 했다. 검정 고무신보다 좋아 보였다. 비닐 신발을 보여주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비닐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그렇지만 잘 찢어지지도 않고,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검정 고무신 사이에 병수가 신은 파란 신발이 더욱 돋보였다.
학교 친구들 중에는 파란 신발을 신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운동화였다. 바닥은 흰색 고무로 되어 있고, 겉은 두꺼운 헝겊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빨간색, 분홍색 운동화를 신었고,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비가 오는 날에도 벗겨지지 않았다. 비를 피하느라 아무리 빨리 뛰어가도 고무신처럼 훌러덩 벌겨지지 않았다. 비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이면 장화도 신고 다녔다. 나는 흰 고무신을 신어 보는 것이 소원인데 다른 아이들은 벌써 파란 비닐 신발이나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운동화만 신으면 달리기는 일등인데.’
나는 운동화만 있으면 일 등쯤은 문제없을 것 같았다. 달리기를 하다가 신발이 벗겨져 주우러 갈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과 달리기 시합을 해서 이기면 진 아이들은 책가방을 들어주거나, 숙제를 대신해 주거나, 새총에 쓸 도토리를 줍어야만 했다. 그래서 일부러 달리기 실력을 늘린다고 혼자 뛰는 일이 많았다.
집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아리랑 고개만 넘으면 고모님 댁이 있었다.
나는 용돈이 궁할 때면 늘 고모님 댁을 찾아갔다. 고모님은 그런 나에게 백 원짜리 동전을 몇 개 주시거나 오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 쥐어 주셨다. 나에게는 큰돈이었다. 고모님 댁도 어려운데 조카인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실 때마다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미안했다.
고모님 댁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언덕 위 공터로 바람을 쐬러 갔다. 아래로 집들이 내려다 보였다. 그런데 그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언덕 아래 경사진 비탈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쓰레기들은 바짝 말라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비탈길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찾는 것은‘운동화’였다. 나는 분명히 어딘가에 버려진 운동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내 예상대로 조금 지나지 않아 운동화 한 짝을 주울 수 있었다. 운동화는 흙이 묻은 채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섞여 있었다. 먼지를 털어보니 꽤 괜찮아 보였다. 운동화 끈도 매어져 있었고, 옆에 몇 군데 찢어진 것만 빼놓고는 쓸 만해 보였다. 나는 다시 다른 한쪽을 찾기 시작했다. 몇 십분 동안 쓰레기 더미를 뒤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운동화 한쪽을 찾았는데 처음에 내가 주었던 운동화랑 모양이 달랐다. 그러나 둘 다 무늬가 없이 그냥 흰색이라 오른발, 왼발만 맞으면 되었다. 나는 모양은 다르지만 한 켤레가 된 운동화가 좋았다. 비싼 돈을 주지도 않고 운동화가 생긴 것이다. 나는 그 운동화를 고모 몰래 소중하게 종이에 싸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깨끗이 씻어서 햇빛에 말려 놓았다.
아이들이 달리기를 하자고 하자 나는 얼른 집에 가서 굴뚝 옆에 숨겨놓은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아이들은 그 비밀을 아무도 몰랐다. 운동화가 짝짜기라는 것은 나만 알았다. 얼핏 보면 같은 운동화로 보일 정도로 잘 맞았다.
“준비, 땅!”
나는 뛰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신발이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음 놓고 뛰었다.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 일등이었다. 나처럼 고무신이 벗겨져 고무신을 다시 신느라고 늦어진 친구도 있었다. 나는 일등을 한 것도 그렇고, 미끄러지지 않고 뛸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신발을 쳐다보았다. 신발은 언제 내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것이었냐는 듯이 하얗게 깨끗하게 내 발에 신겨져 있었다.
그러나 짝짜기 운동화를 학교에는 신고 가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금방 들통이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어머니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다. 괜히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운동화는 달리기 할 때만 신었다. 짝짜기 운동화는 내 보물 1호였다.
다른 아이들은 어머니를 졸라서 운동화를 사 달라고 떼를 쓰는데, 나는 운동화를 사 달라고 말을 하지 않으니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추석 명절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셨다. 제사상에 놓을 고기며 과자며 장을 보신 후 어머니는 나를 신발 가게에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는 주인아저씨에게 운동화를 물으셨다.
“얘 발에 맞는 운동화 하나 주세요.”
“인자 굴뚝 뒤에 숨카논 운동화 버리고 이것 신고 다녀라.”
어머니는 알고 계셨다. 내가 짝짜기 운동화를 주워서 굴뚝 뒤에 숨겨 놓고 달리기를 할 때마다 신고 나가는 것을 아셨던 것이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경남여고 뒤 담벼락 밑에서 고무신을 때우는 아저씨가 보였다. 고무신을 때우느라 고무신을 지지고 있는 인두에서 검은 연기가 나며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제 고무신이 떨어질 때마다 고무신을 때우러 갈 일도 없게 되었다. 아저씨는 내 마음을 모를 것이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봉지에 싼 운동화가 보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 와서도 미련이 남았던지 짝짜기 운동화를 버리지 못했다. 어머니를 새 운동화를 신고 주운 운동화는 버리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버리지 못했다. 그 후에도 아이들과 달리기를 할 때면 나는 늘 짝짜기 운동화를 신고 뛰었다. 어머니께서 사 주신 운동화는 학교에 갈 때 신고 아이들과 놀 때에는 늘 주운 운동화를 신었다. 짝짜기 운동화 떨어져도 괜찮고 닳아도 괜찮았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운동화는 오랫동안 나와 같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