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과껍질

우리는 사과껍질을 주워서 얼른 입에 집어넣었다.

by 이대영

동네 뒷산을 온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배가 고팠다. 그러나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만 집으로 가지 않았다. 집으로 가봤자 별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동네 주변에 있는 밭을 기웃거렸다. 가을이나 봄철에는 산에서 칡을 캐서 먹기도 하였고, 동네 밭에서 무를 뽑아서 먹고, 고구마나 감자를 캐 먹으면서 허기를 채웠다. 산동네 아이들에게 배고픈 것은 큰 문제였지만 그 해결책도 가지고 있었다.

산에는 산소가 많았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어디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추석 같은 명절 전후로는 산소에 가면 음식들이 많이 버려져 있었다. 산소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버리고 가는 음식들이었다. 우리는 버려진 음식들이 오래된 것인지, 아니면 금방 제사를 하고 버린 음식인지 잘 알 수 있었다.

큰 바위 아래에서는 자주 굿을 했다. 촛불을 피워 놓고 몇 시간씩 오랫동안 굿을 하였다.

마침 약수터 바로 옆에 있는 큰 바위 앞에서 굿이 한창이었다.

“둥둥둥둥.”

“챙챙챙챙”

북소리와 상쇄 치는 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제단 위에 있는 촛불이 바람에 펄럭이고 향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나는 향냄새가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향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나는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나무 수풀 사이에 가만히 숨어서 굿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굿하는 것을 자주 보는 아이들은 언제쯤 굿이 끝날지도 알고 있었다. 놀면서도 징소리나 장구 소리를 듣고 끝나는 시간을 대충 알았다. 그리고 때에 맞춰서 가보면 정말로 굿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요란한 징소리가 멈췄다. 굿이 다 끝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서둘러서 음식들을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막걸리를 뿌리면서 “고수레”하고 외쳤다. 하얀 종이 위에 생선 머리며 나물이며 음식들을 조금씩 덜어서 땅에 놓아두었다. 사과와 배도 썰어서 덜어 두었다. 귀신이 와서 먹는다고 했다. 밤과 대추도 놓아두었다. 아이들은 나무 뒤에 숨어 보면서 군침을 삼켰다. 떡도 두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다 끝났는지 사람들이 산을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종이에 싸여 땅에 놓인 음식 앞으로 다가가서 주워 먹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그런 음식을 먹으면 부정 탄다고 했는데 배고픈 아이들에게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냥 맛있게 먹고 배만 부르면 되었다. 그것도 굿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빨리 와서 먹지 않으면 들짐승들이 손을 대기 때문에 빨리 와서 먹어야만 했다.

사과나 배 같은 것이 귀한 때였다. 제사나 명절 같은 날이 아니면 구경하기 어려웠다. 한쪽 수풀 옆에 보니 사과껍질이 땅에 버려져 있었다. 이미 사과껍질에는 개미가 까맣게 붙어 있었다. 나는 얼른 사과껍질을 주워서 개미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사과껍질을 입에 넣었다. 씹으니 사과즙이 입 안에 고였다. 사과 껍질이라고 사과 알맹이와 다르지 않았다. 가끔은 어른들이 사과를 깎고 껍질을 버릴 때마다 어른들이 안 보는 틈을 이용해서 우리는 얼른 사과껍질을 주워 먹었다.

그리고 가끔은 바나나를 주울 때도 있었다. 그것은 정말 횡재하는 날이었다. 바나나는 소풍을 가면 부잣집 아이들이 가지고 오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바나나를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어머니께서 선생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바나나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혹시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쳐다보았지만 그러나 아무도 바나나를 얻어먹지 못했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아이들과 놀다가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찬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색깔의 보리밥이 한 그릇 눈에 띄었다. 된장과 싱싱한 풋고추를 찾아서 땅바닥에 내려놓고 물을 떠서 밥그릇에 붓고 허겁지겁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입에 넣는 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풋고추 맛도 상큼했다. ‘써걱’ 소리를 내면서 풋고추를 한 입 베어 물면 풋고추의 싱싱한 맛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배가 고프니 무엇을 먹던지 배가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반찬이라고 해봤자 된장과 고추가 전부였지만 산에서 주워 먹은 제사 음식보다 나았다.

“대영아! 아이스께키 사 먹으러 가자.”

밥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문 밖에서 친구 종욱이가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데?”

“학교에 가자. 그게 가면 아이스께키 아저씨 있다.”

그러면서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쑤욱 내밀어 보였다.

학교 앞에는 오후반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막 교문을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학교 정문 옆에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보니 아이스께키 장사 아저씨가 아이스께키를 팔고 있었다. 아이스께키는 큰 나무로 된 맥주통 같이 생긴 것 안에 담겨 있었는데, 입구 마개를 열고 안에서 얼음물에 담긴 은색 빛이 나는 오리알처럼 생긴 것을 꺼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고무를 젖히고 열자 나무 막대기에 달린 아이스께키가 나왔다.

설탕을 녹여서 만든 비행기나 배, 별 같은 것을 뽑는 ‘뽑기’도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번호를 갖고 싶은 이름 위에 놓고 깡통 안에 들어 있는 종이를 뽑아서 맞추면 가져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연신 번데기를 파는 수레 앞에서 번호 판을 돌리며 “한 봉지 더”를 외쳤다. 아저씨는 그렇게 걸린 아이에게 숫자만큼 번데기를 주었다. 다 먹은 아이에게는 빈 봉지에 번데기 국물을 담아주는 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사과 궤짝을 엎어 놓고 옆에는 연탄 화덕에 쪽자(국자)를 올려놓고 설탕물을 녹이는 쪽자 아저씨도 있었다. 쪽자에 든 설탕물이 녹으면 소다를 타서 노랗게 부풀게 해서 유리판에 탁 얹어 놓고 별 모양이나 비행기 모양의 핀을 꾹 누르면 모양이 찍혔다. 아이들은 작은 핀으로 입에 침을 묻혀가며 모양을 오렸다. 갈분 가루를 끓여서 떠먹는 아이도 있었다.

학교 옆 만화방에는 새로 나온 만화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호야’도 있고, ‘홍당무’도 있고, 훈이도 있었다. 호주머니를 뒤져 보니 오십 원이 있었다. 만화방 입구 의자에 앉아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벌써 새로 나온 만화는 다른 아이가 먼저 보고 있었다. 그 만화를 다 보고 나면 다른 친구가 보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기다리면서 보고 싶은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보고 있는데 누가 내 귀를 잡아당겼다.

“아야!”

누군가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어머니였다.

“어데 갔는가 안 보이더만은 여기 있었네.”

오전에 학교에 다녀와서 집에서 밥 먹은 흔적이 있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 어머니가 찾아 나섰던 것이었다. 온 동네를 찾아다니다가 혹시나 해서 만화방을 들여다보니 내가 열심히 만화를 보고 있더라고 했다.

멀리 산골짜기에서 오늘도 굿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저녁노을이 산동네를 차츰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