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짧게 한마디를 하시고 부엌문을 나서셨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데 집집마다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산이라 새벽 공기가 아주 차가웠다. 산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아침 일찍 서두르는 이유는 일하러 가는 곳이 멀리 있어서이다. 산 아래 가까운 시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걸어서 2시간도 정도 걸리는 국제시장까지 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국제시장에는 일거리를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일거리는 늘 경쟁이 되었다.
부엌에서 아침 밥상을 챙기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장작불을 식사 준비를 하셨다. 진흙으로 지은 집은 부엌은 물론이고 집 전체를 훈훈하게 데웠다. 나무 타는 냄새만 없었으면 참 좋았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집을 나섰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걸어야 국제시장까지 제시간에 갈 수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야 물건을 한 개라도 더 많이 지고 나를 수 있었다.
“다녀올게.”
아버지는 짧게 한 마디를 남기시고 부엌문을 나서셨다. 나는 잠결에 아버지가 부엌문을 나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너무 이른 시간이기도 하지만, 따뜻한 이불 때문에 나오지를 못했다.
아버지는 걸음이 빠르셨다. 그래도 국제시장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웃천막을 내려와서 고관(옛 일본인 주거지)을 거쳐서, 영주동 고개를 넘어 국제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셨다. 물론 시내에 내려가면 버스가 있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버스비가 아까 왔던 것이다.
국제시장에 도착하면 지게를 맡겨 놓은 곳에 가서 지게를 찾아 일을 하셨다. 다른 사람들보다 부지런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금방 다른 사람이 일을 가져간다고 하셨다. 추석 명절날에는 시내에 있는 방앗간에서도 일을 하셨다. 떡을 찌고 나르고 쉴 새 없이 일하셨다. 방앗간에서 일을 마치고 나서 집에 오실 때에는 방앗간에서 떡을 하고 남은 자투리 떡을 얻어 오셨다. 밤이랑 대추랑 같이 섞여 있어서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어머니랑 같이 국제 시장에 갔을 때 아버지는 나를 자전거 뒤 짐받이에 태우고 신이 나게 달리셨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서 달렸다. 나는 그렇게 빠른 자전거를 보지 못했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겁이 나서 나는 아버지를 꽉 붙잡아야만 했다.
미군 부대에서 하역 일을 하면서 하루는 큰 둥그런 깡통을 가지고 오셨다. 그 깡통에는 엿물이 가득했다. 일을 하다가 다른 사람이 모르고 엎지른 것인데 얼른 깡통에 주워 담았다고 하셨다. 주워 담다 보니 지푸라기 같은 것이 그냥 같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나는 그것을 얼마나 퍼 먹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속이 너무 달아서 밤새도록 물을 퍼 마셔야만 했다.
어머니는 진시장 앞 길거리 한쪽에서 도너스(도넛) 장사를 하셨다. 큰 시장에서 도너스를 소매로 받아서 파셨는데 어린 나는 어머니 옆에 있으면서 먹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손님이 하나 사면 하나 달라고 하면서 참 철없이 굴었던 모양이다.
어둑어둑해지면 새벽에 일하러 나갔던 동네 사람들이 다시 산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른쪽 손에는 연탄을 한 장, 두 장 새끼줄에 꿰어서 들고, 또 다른 손에는 봉지쌀을 한 되나 반 되 사서 가지고 올라왔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은 매일 먹을 양식을 사야만 했다. 나도 그런 심부름을 한 적이 많았는데, 어쩌다가 올라오면서 잘못해서 봉투가 찢어져서 쌀을 모두 쏟아버리거나, 연탄을 깨트린 적도 있었다.
시내 주막에서 약주를 한잔씩 한 아저씨들은 적당하게 취해 있었다. 동구 밖 저 밑에서부터 흥얼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천둥 산 박달재에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 항아~.”
어둠 속에서 들리는 것은 구성진 노랫소리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네 집 아버지인 줄 알 수 있었다. 부르는 노래는 늘 같았다. 유행가를 부르는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은, 또 어떤 아저씨는 팝송도 부르고, 아리랑을 부르는 아저씨도 있었고, 민요 장단을 부르며 올라오는 아저씨도 있었다.
동구 밖에는 큰 너른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를 지나면 동네였다.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거기서 쉬다가 동네로 들어왔다. 거기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시내가 다 보였다. 시내는 마치 반딧불을 모아 놓은 것처럼 환하게 반짝거렸다. 큰 도로에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큰길 사이로 이따금 전차도 땡땡 거리며 지나갔다. 산동네에서는 세상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동구 밖에서 일하러 나갔던 아버지를 기다렸다.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그래도 끝까지 기다리다 보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동구 밖은 혼자 지나다니기에는 무서웠다. 그래서 아래 천막 동네를 지나서 동구 밖에 이를 즈음이면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 올라왔다.
동구 밖은 아래 천막과 웃천막의 경계였다. 아이들은 아래 천막과 전쟁놀이를 할 때면 동구 밖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마치 전쟁에서 성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나도 얼마나 기다렸을까. 친구들이 아버지를 만나서 손을 붙잡고 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도 약주를 드시고 노래를 부르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터벅터벅 걷는 걸음걸이 모습이 어두움 속에서 보였다. 손에는 무엇인가를 담은 봉지가 보였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아버지가 늘 자주 부르시는 노래였다.
“아버지!”
“어? 대영아. 니가 여기 우짠 일이고?”
“빨리 가입시더.”
“..... 자, 이거 먹어라.”
“뭔데 예.”
봉지 안에는 시내 양과자점에서 파는 밤 과자가 한 봉지 가득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올라오시면서도 집에 있는 우리를 생각하셨던 것이다. 대포 집에서 약주를 드시고 나오시면서도 과자 봉지를 잊지 않으셨다. 얼마나 꽉 쥐셨는지는 봉지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우리 집에도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식구들은 모두 자지 않고 기다렸다.
산동네에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늦게까지 불이 켜진 집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