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여기 뱀 잡아왔어요."
“바둑아 바둑아 이리 와, 나하고 놀자.
“영이야 이리 와, 나하고 놀자.
“영이야 이리 와, 바둑이하고 놀자”
국어시간이 되면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이 먼저 한 줄을 읽고 나면 아이들이 따라서 읽었다. 몇 번을 그렇게 따라서 읽고 나면 이번에는 아이들이 차례대로 일어나서 책을 읽었다. 책을 또박또박 틀리지 않고 잘 읽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은, 책을 떠듬떠듬 읽는 친구들도 있었다. 책 읽기가 잘 되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읽을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교실마다 학급문고를 만들어서 헌 책을 비치해 놓았지만 며칠만 지나면 다 읽고, 책은 오랫동안 바뀌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였다. 당시 잡지로는 중앙일보사에서 1961년 1월에 창간(1994년 9월 폐간)한 월간지 《소년중앙》이 있었고, 한참 뒤에 《어깨동무》, 《보물섬》이 있었지만,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돈을 주고 구입해서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산동네 아이들은 놀 거리가 없으면 아래 동네에 있는 만화가게로 놀러를 갔다. 만화가게는 아이들에게 유일한 읽을거리와 재미를 주는 장소였다. 더 좋은 것은 만화를 5권을 보면 저녁에 만화방 주인집 아저씨네 방에서 흑백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퀴퀴한 발 냄새와 땀 냄새가 진동했지만 아이들은 아량 곳 하지 않고 김일 선수와 우리나라 권투 선수들을 응원했다.
어느 날 아침 학교 수업 시간에 스르륵 하고 교실 문이 열렸다. 수업을 하고 있던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교실 문으로 향했다. 교실 문 앞에는 양복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서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저씨와 미리 이야기가 되셨는지 교실 안으로 안내했고 아저씨는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아저씨가 좋은 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해서 왔어요.”
그러면서 책 한 권을 들어 보였는데, 그것은 파란색 양장으로 된 동화책이었다.
“여러분, 하루 10원씩만 내면 돼요.”
“여러분 하루에 군것질 얼마 해요? 십 원? 이십 원?”
“여러분들이 사 먹는 군것질 값에서 10원씩만 매일 내면 돼요. 할 수 있겠죠.”
‘하루 10원’이라.........?
아이들은 별로 크지 않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군것질 비하면 돈 십 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다.
“자, 여기 나눠 주는 종이에 자기 이름만 써서 내면 돼요.”
아이들이 채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책과 종이가 나누어졌다.
책은 보기에도 꽤 값있게 보였다. 학교에서 보는 교과서와는 달랐다. 종이는 매끄럽고 윤이 났으며 컬러도 멋졌다.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쉽게 종이에 이름을 쓰지 못했다. 서로 눈치만 볼뿐 종이에 이름을 쓰는 친구는 없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이름을 써 내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슬금슬금 종이에 이름을 써서 내기 시작했다.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냥 이름을 써서 냈을 뿐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도 동화책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하루 10원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루 10원도 없을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사 먹는 것을 얻어먹거나 그냥 가게를 쳐다보면서 지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가끔은 용돈 때문에 멀리 살고 계시는 고모님 댁에 일부러 놀러 가기도 했다.
당장 내일 아침에 10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산에 뱀을 잡으러 갔다. 뱀이 나올 곳 같은 데서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뱀을 볼 수 있었다. 산에는 이름 모르는 작은 뱀들이 많았다.
“뱀이다!”
아이들의 외치는 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렸다. 그러자 아이들이 우르르 소리 나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과연 그곳에는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 만한 뱀이 바위 사이 수풀에 숨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은 모두 뱀을 향해서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조그만 뱀은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몸통이 찢겨서 너덜너덜해졌다. 막대기로 뱀을 봉지에 담아서 조심조심해서 산을 내려와서 시내에 있는 뱀 집으로 향했다. 나는 이제 뱀을 팔면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의기양양해하며 뱀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저씨 여기 뱀 잡아왔어요.”
우리는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으면서 기뻐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 생각이었다.
“아이고, 이놈들아 이렇게 죽은 뱀은 안 사. 살아 있는 뱀을 가져와야지.”
“예?.....”
우리는 살아있는 뱀을 잡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냥 뱀이면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상관없을 줄 알았다. 뱀을 팔아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남는 돈으로 동화책 값을 해결하려고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에 10원을 내었다. 어머니에게 받은 그날 용돈이었다. 예전 같으면 학교 가는 길이나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서 구멍가게나 문방구에 들러서 과자를 사 먹거나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공부하러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10원을 내기 위해서 학교에 가는 것만 같았다. 10원을 낼 때마다 내 이름이 쓰인 종이에 빨간 도장을 꾹! 찍어 주었다. 하루 종일 내일은 어떻게 10원을 내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엄마에게 하루 10원 용돈을 타기가 쉽지 않았다. 10원을 얻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그냥 덜컥 값비싼 동화책을 월부로 샀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나중에 커서 월부가 얼마만큼 부담이 되고 힘든 것인지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외상으로 소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내가 그 꼴이었다.
그날 10원을 내지 못하면 그다음 날 20원을 갚아야 했다. 10원도 어려운데 20원은 더 어려웠다. 동화책 속에 나오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야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는 재미있는데, 동화책 값만 생각하면 힘이 빠졌다. 동화책에는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준다고 쓰여 있었는데, 꿈과 용기는커녕 기운만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60개의 네모 칸 안에 모두 빨간 도장이 찍혔다. 그렇게 도장이 많이 찍힌 것은 처음 보았다. 나는 혹시라도 덜 찍혔는지 세어 보았다. 도장은 정확하게 60개가 맞았다. 모두 600원이었다. 그 당시 한 달 육성회비가 600원이었으니까, 꽤 큰 금액이었다. 하루 10원씩 모두 합하면 600원이나 되는 큰돈이라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
동화책은 내 책상 책꽂이에 오랫동안 꽂혀 있었다. 다른 교과서 사이에서 동화책은 빛이 났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친구들 중에는 그런 동화책을 구입하지도 못한 친구들도 많았다. 고아원에 있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난한 집에서 사는 친구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 선생님은 다 본 동화책을 친구들에게 빌려줘서 같이 나눠 보게 했다. 나는 오랫동안 책의 제본이 뜯어지고 재봉실이 보일 정도로 동화책을 가지고 있었다. 동화책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제일 비싸게 산 물건이었다. 동화책에 대한 기억보다는 10원짜리 월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돈에 대한 것을 모르던 어릴 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