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로 가는데 자꾸만 등 뒤가 오싹거렸다.
라디오가 귀한 시절이었다. 라디오는 시내 전파상이나 동네에서도 조금 잘 산다는 집에서만 가지고 있었지 일반 집에서는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 대신 일반 가정집에는 ‘스피커’라는 것이 있었는데, 스피커는 가로 세로 약 3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로,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졌다. 스피커는 채널이 없고 말 그대로 라디오 소리만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스피커 통 안에는 큰 스피커 하나와 소리를 조절할 수 있는 삼각형 모양의 스위치가 바깥에 달려 있었다. 스피커는 삐삐선이라고 불리는 작고 가느다란 전선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스피커가 달린 집에서는 큰 송출기가 설치되어 있는 동네 집에서 보내주는 유선 방송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경상북도 울주군에 있는 새미골에 대한 전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마루 기둥 위에 매달려 있는 스피커에서〈전설 따라 삼천리〉가 방송될 때면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매일 밤 10시가 되면 스피커에서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방송되었다. 전설 따라 삼천리는 당시 M 방송 라디오에서 성우 유기현(柳基鉉)씨의 구수한 해설로 방송되었는데 각 지방의 전설을 소개하는 그런 내용이었다.(전설 따라 삼천리는 1965년 5월 1일부터 1983년 10월까지 15년 동안 약 4천 회가 방송되었다)
곧이어 스피커에서는 사람들 목소리가 나오고 조금 있자 음침하고 기괴한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귀신 소리는 물론이고, 바람소리, 여우소리, 늑대 소리 등, 기분 나쁜 소리는 모두 다 나왔다. 삐걱 거리며 문 여닫는 소리며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귀신 소리는 오금을 저리게 했다. 그 시간이 되면 오줌을 누고 싶어도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화장실에 앉아 건너편에서 너풀거리는 나뭇잎을 봐도 꼭 귀신이 너풀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방송을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설 정도였다.
그러나 흐릿한 호롱불 등잔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시는 어머니는 별로 겁을 내는 기색이 없으셨다. 그냥 입에서는 옛날 노래 가락 소리만 흥얼거리실 뿐 아주 평온한 모습이었다.
스피커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겁이 나는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모든 신경을 스피커에 집중하고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두근거렸다.
그때였다.
“왁!”
갑자기 난데없이 고함 소리가 우리를 덮쳤다.
“악!”
우리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모두 놀라고 말았다. 얼마나 놀랬던지 여동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가에는 눈물까지 성글성글 맺혀있었다.
옆에서 조용히 바느질하시던 어머니가 우리를 놀래 키려고 갑자기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하하하.”
어머니는 뭐가 그리 좋으신지 우리를 보고 웃으시면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졌다.
우리는 매번 그렇게 똑같이 당하면서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회를 어머니는 놓치지 않으셨다.
문제는 화장실에 가는 게 문제였다. 집에서 공중 화장실까지는 얼마를 걸어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었다. 겁이 잔뜩 나 있는 여동생을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엄마, 나 화장실 가야 하는데.”
“그래? 다녀와.”
“겁이 나서.”
“사내자식이 겁은 무슨, 얼른 다녀와.”
다른 날 같으면 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같이 나서셨는데, 오늘은 아마도 나를 골리려고 그러시는지 혼자 가라고 하셨다. 조금 전에 놀랬던 일 때문에 내가 겁을 많이 먹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아셨다.
화장지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데 자꾸만 등 뒤가 오싹거렸다. 한 발 자국을 걷고 뒤를 돌아보고, 또 한 발자국을 걷고 뒤를 돌아보고 그렇게 해서 겨우 공중화장실에 도착해서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 바람에 켜 놓은 촛불이 팔랑 거렸다. 조금 전 일 때문에 더욱 겁이 났다. 멀리서 컹컹하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갑자기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똥 다 눘냐?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화장실에 보내 놓고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뒤따라 오셨던 것이다. 다른 날 같으면 금방 볼 일을 보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을 건인데, 그날 나는 볼 일을 보면서 하늘에 있는 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엄마가 있는 밤은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도 나는 겁을 내면서도 여전히 전설 따라 삼천리를 듣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옆에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