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은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유일한 사치였습니다.
“얘들아! 목욕하러 가자.”
설을 앞두고 아이들이 목욕탕에 가자고 모였다. 지금은 집 안에 샤워 시설이 있고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물이 콸콸 쏟아지지만, 그때만 해도 한번 목욕을 하려고 하면 몇 날 며칠을 벼뤄야 만 했다. 씻는 것은 겨울철이 가장 힘들었다. 물통마다 물이 꽁꽁 얼었기 때문에 세숫대야에 물을 퍼서 얼굴을 씻지만 고양이 세수를 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침마다 큰 가마솥에다 물을 끓여서 식구들이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데웠고, 아이들 목욕도 부엌에서 문을 닫고 직접 씻겼다.
그러나 큰 아이들은 집에서 목욕을 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시내에 있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해야만 했다. 어떤 어머니들은 목욕비를 아끼려고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아직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속이고 목욕을 시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주위 어머니들에게 얼마나 많이 눈총을 받는지 모른다. 아이들 손은 늘 때가 끼이고 터고, 때로는 손등이 갈라져서 피가 나기도 했다.
시장 목욕탕에는 명절을 맞이해서 목욕을 하러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서 명절날 차례를 지내기 전에 새벽 일찍 목욕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목욕탕은 갑자기 밀려든 손님들 때문에 옷을 보관할 빈 옷장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같이 몇 명이서 한 옷장에 옷을 보관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도 여의치 않는 사람들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옷을 담아서 따로 보관하기도 했다.
수건과 때를 미는 이태리타월은 필수였다. 어머니들도 아이들 혼자만 목욕하러 간다면 보내지 않았다. 혼자 가면 제대로 때를 밀지도 않고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끼리 같이 목욕하러 보낸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더욱 아니었다. 같이 목욕하러 가서 실컷 놀기만 하지, 제대로 목욕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어머니를 의식해서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손이나 팔뚝, 목, 얼굴만 열심히 때를 밀었는데, 어떤 애는 얼마나 때를 열심히 밀었던지 살갗이 피가 날 정도로 빨개지기까지 했다.
욕실 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욕실 바닥도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했다. 물을 퍼 담는 작은 세숫대야를 들고 목욕탕을 돌며 빈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어떤 어른은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목욕탕 안에서 잠을 잔다는 게 아이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목욕하러 왔구나. 어서 들 씻어라.”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을 발견할 것이다. 아이들은 벌거벗은 선생님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선생님은 목욕을 하시지 않는 줄로 아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화장실에 가실까? 목욕을 하실까? 아이들은 마음이 순수했다. 늘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계시는 모습만 보았지 목욕하시는 모습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 채 그냥 선생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선생님, 영호도 같이 왔어요.”
“아, 그렇구나.”
선생님은 환한 미소를 보이시면서 영호를 보시면서 번쩍 손을 드셨다. 그리고 우리는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괜히 선생님 앞에 그렇게 있는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냥 모르는 채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목욕탕 안에는 산동네 웃천막 어른들도 많이 와 계셨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볼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냐, 목욕하러 왔구나. 허허허.”
그리고 이내 아이들은 목욕탕 안에서 놀기 시작했다. 차가운 냉수에서 첨벙 거리면서 수영을 하고 어른들처럼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놀았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시끄러워지자 어른들 입에서 “조용히”하는 소리가 나왔다. 한 아저씨는 “어, 시원해”하면서 뜨거운 온수를 틀었다. 온탕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뜨거운 것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은 온탕 바깥에 앉아서 그런 아저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또다시 시끄러워졌다. 목욕탕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술래잡기를 하고, 그리고 온탕 안에 어른들이 안 계신 것이 확인되면 얼른 다시 찬 물을 틀었다.
그렇게 놀다가 지치면 아이들은 그때서야 자리에 앉아서 때를 밀기 시작했다. 한바탕 노느라 퉁퉁 불은 살갗을 타올로 밀자 굵은 때가 마치 지우개 똥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때는 밀고 밀어도 계속 나왔다. 이제 겨우 손 등을 미는데 언제 몸통이며 다리며 다 씻을지 몰랐다. 그러다가 그냥 대충 씻고는 목욕탕에서 나왔다. 한눈에 금방 목욕을 하고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손 등이나 팔에는 아직도 잔뜩 때가 있어서 목욕을 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손 등을 살폈다. 목욕탕에 있는 크림을 바르자 맨들 맨들하게 때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놈들! 거기서 뭐 해?”
목욕탕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옆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고함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아이들 서너 명이 후다닥 달아나고 있었다. 우리 또래 되는 아이들이 조그만 창문으로 여탕을 훔쳐보다가 들킨 것이다.
몸에서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났다. ‘집에 가면 엄마가 분명히 손과 팔과 목을 보자고 할 거야.’
집으로 올라가면서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손등을 문질렀다. 그렇지만 목 뒤에는 아직도 여전히 때가 불어 있었다. 목욕하는 일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가장 큰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