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월남 장병 아저씨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러 가는 아저씨들을 그렇게 환송했습니다.

by 이대영

월남이라는 나라에 우리나라 군인 아저씨들이 싸우러 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이들은 월남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더운 나라고, 바나나랑 야자나무가 있는 나라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모두 깨끗한 옷을 입고 태극기를 들고 산동네를 내려갔다. 월남에 파병 가는 군인들을 환송하는 환송식에 간다고들 하였다. 학교 앞에 버스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아무 말 없이 버스를 탔다. 나와 몇몇 친구들도 어머니 손을 붙잡고 버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큰 태극기를 손에 꼭 잡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학교 옆에 있는 문방구도 보였다. 문방구 아저씨는 무엇을 하시는지 가게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버스가 시내에 접어들자 많은 자동차들이 보였다. 땡땡 소리를 내며 전차가 지나갔다.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부산항 제4부두’라고 쓰인 큰 글씨가 보였다. 어디선가 브라스밴드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가 크고 웅장하게 들렸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모두 소리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고같이 큰 건물 사이로 큰 배가 보였고 그 배 위에는 수많은 군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그 광경이 가까워오자 흥분되기 시작했다. 태극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곧 우리도 그 인파 속에 같이 파묻혀서 큰 소리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열기는 뜨거웠다. 큰 배(군함) 위에는 수많은 군인들이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쉬도록 큰 소리로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


배 위에서 수많은 오색 테이프가 허공으로 던져졌다. 테이프는 원을 그리며 바다 위로 그리고 부두 위로 떨어졌다. 마치 선녀의 날개 옷 같았다. 파란 하늘과 뭉개 구름 아래로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배아래 출렁이는 물결 위에는 그렇게 떨어진 형형색색의 종이테이프들과 종이 조각들이 어지럽게 둥둥 떠다녔다. 우리는 목이 쉬도록 계속해서 만세를 불렀다.

“뿌-웅!” 하는 배 고동 소리가 들렸다. 배가 출발한다는 소리였다. 그러자 사람들의 응원 소리는 더 커졌다. 귀를 막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큰 소리였다.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울고 있었다.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이윽고 배가 천천히, 아주 조금씩 스르르 움직였다. 배는 마치 가고 싶지 않은 듯해 보였다. 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외쳤다.

“꼭 살아서 돌아와.”

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데 큰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엉엉 우는 소리, 만세소리, 사람들의 얼굴은 비장하다 못해 슬퍼 보였다.

배는 점점 멀어져 갔다. 부산항을 지나서 저 멀리 까마득하게 배는 멀어져 갔다. 그리고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부두에는 우는 소리와 탄식소리, 한숨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새 학기가 되고 새 교과서를 받았다. 거기에는 국군장병 아저씨들이 월남에서 열심히 싸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헬리콥터가 하늘을 날고 있었고, 탱크가 그려져 있고, 군인 아저씨들이 총을 들고 줄을 지어 걸어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학교에서는 각 반마다 ‘위문품’을 모았다. ‘위문품’이라고 쓰인 하얀 자루에 위문품이 담겼다. 아이들은 제 각기 가져올 수 있는 위문품을 내었다. 편지지, 편지봉투, 볼펜, 치약, 칫솔, 사탕, 두루마리 휴지, 그리고 위문편지 등 정성이 담긴 위문품을 각 반마다 두세 개씩 만들어서 모았다.

그리고 어느 날 교실에서 한바탕 크게 웃는 일이 벌어졌다.

친구 중 누군가가 잘 모르고 위문편지를 쓰면서 추운 나라인 줄 알고 ‘추운데 수고가 많으십니다’라고 편지를 썼는데 국군 아저씨가 답장을 보내온 것이었다. 선생님이 읽어 주시는데 그 편지를 받고 군인 아저씨들도 우리처럼 한 바탕 크게 웃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편지를 쓴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여기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추운 곳이 아니란다. 여기는 더운 나라란다.”

2010년 10월 2일 부산항 제4부두에서는 월남 파병 45주년을 기념하는 ‘파월 한국군 출정 기념식 및 추모제가 열렸다. 부산항 제4부두는 1965년 10월 3일 해병대로 구성된 청룡부대가 여단 규모의 병력으로 제일 먼저 파병되었으며, 뒤를 이어 11월 16일에는 육군으로 구성된 맹호부대가, 1년 뒤에는 육군 백마부대가 파병된 곳으로 파월장병과 가족들의 헤어짐과 만남이 교차했던 눈물의 장소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월남 파병식이 재현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