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소리가 할머니가 치시는 장구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둥땅 둥땅, 둥땅 둥땅.”
멀리서 장구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리가 할머니가 치시는 장구 소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치시는 장구 소리는 다른 사람과 달랐다. 그래서 멀리 있어도 나는 할머니의 장구 소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나 잔치 집에는 늘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장구를 메고 장구를 신명 나게 치셨다. 할머니의 장구 치는 솜씨는 동네에서 소문이 나 있었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도 장구를 잘 치셨다고 한다. 젊었을 때 사람들은 할머니를 ‘정읍 댁’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내가 태어나서부터는 ‘대영이 할머니’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할머니는 동네 어디를 가시던지 나를 늘 앞장 세우고 다니셨다.
내 예상이 맞았다. 그날도 할머니는 동네잔치 집 마당 한가운데 서서 장구를 치고 계셨다.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어깨춤을 추며 덩실덩실 할머니 주위를 맴돌았다. 할머니는 약주를 한 잔 하셨는지 얼굴이 발그레 해져 있었다. 흥에 겨워 신명 나게 어깨춤까지 춰 가며 장구를 치시던 할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장구 소리가 더욱 힘 있게 울렸다.
할머니는 힘이 어디서 그렇게 나는지 힘 있게 장구를 치셨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장구를 치시면서 장구채를 들고 어깨 짓을 할 때마다 할머니가 입고 계신 하얀 모시 저고리가 빛이 났다. 할머니가 입고 계신 옷이 꼭 하얀 날개옷처럼 나풀거렸다. 할머니는 마치 나에게 자랑이라도 하듯이 더욱 신명 나게 있는 힘을 다해 장구를 두드리셨다.
할머니에게 나는 귀한 맏손주였다. 그 맏손주가 보는 앞에서 장구 치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내가 오기까지 기다리셨던 것은 아닐까. 할머니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얼굴에도 땀이 맺혔고, 콧잔등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이윽고 조금 쉬실 때가 되셨는지 장구를 땅에 내려놓고 나무 지팡이를 짚고 껑충껑충 걸음으로 마루에 올라앉으셨다. 할머니는 왼쪽 다리 허벅지 아래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계셨다. 아주 오래전에 시집을 와서 전차에 치이셔서 다리를 잃으셨다고 했다. 의아해하겠지만 할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작은 지팡이를 다리 아래 궤어서 넘어지지 않게 하고 서서 장구를 치시는 것이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것도 여름 더위 햇빛 아래에서 말이다. 할머니는 그 몸으로 서울에도 가셨고, 시골 친척집으로도 다니셨다. 교통편이 불편한 옛날임에도 불구하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몸을 지탱하시면서 껑충 걸음으로 고개를 오르시고 계단을 오르셨다. 시내에서 산 위에 있는 마을로 올라오려면 장정 걸음으로도 족히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할머니는 중간중간마다 앉아서 쉬시면서 땀을 닦으시며 그렇게 산을 오르셨다.
할머니는 가끔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장구를 가르치셨다.
“채는 이렇게 잡는 법이여”
“한 번 잡아 봐.”
“할머니 이렇게?”
“그려, 잘하네. 이제 한 번 쳐봐.”
“둥땅 둥땅 둥땅 둥땅.”
장구에서 소리가 났다.
할머니는 몇 번이나 장구채를 잡은 내 손을 바로 잡아 주시면서 장구 치는 법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겨우 장구 치는 흉내만 낼뿐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가 장구를 잘 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손주가 장구를 친다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장구를 잘 치시는 것도 살펴보면 할머니가 ‘굿’을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의 굿을 도맡아 하셨다. 산에 있는 바위 아래에서도 할머니는 굿을 하셨고, 약수터며 나무 아래며 안 가시는 곳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굿이 필요할 때마다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 내가 보기에도 아주 두꺼워 보이는 책들을 줄줄 외우셨다. 〈천수경千手經〉,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줄줄 외우시면서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는 모습은 거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굿이 있을 때마다 할머니는 나를 부르셔서 흰 종이를 내 미시며 말씀하셨다.
“여기다가 뱀 다섯 마리하고 닭 다섯 마리 그려봐.”
“할머니 뭐 하시려고요?”
“아, 나중에 굿 하는데 쓸라고 그랴.”
“예.”
이제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그림 실력이 얼마만큼 될까마는 할머니는 굿이 있을 때마다 매번 나에게 그림을 부탁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주신 종이에 연필로 뱀을 그렸다. 몸통은 구불구불하게 그리고 몸에는 사선을 그어가면서 뱀처럼 그렸다. 닭은 내가 봐도 닭인지 메추리인지 모를 정도였지만 통통하게 몸통을 그리고 머리 위에는 벼슬을 그려서 닭처럼 보이게 했다. 벼슬이 없으면 닭인지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할머니, 여기 있어요. 다 그렸어요.”
나는 뱀과 닭을 그린 종이를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아이고 내 새끼 정말 뱀 같이 잘 그렸네, 정말 닭처럼 그렸어.”
할머니는 나와 그림을 번갈아 보시면서 아주 흡족해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할머니가 굿을 하는 자리에 떡 하니 걸렸다. 내 그림이 효험이 있었는지, 할머니가 하시는 굿이 효험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는 굿을 할 때마다 철철 힘이 넘치셨다.
어쩌다가 내가 아버지께 혼이 날 때에도 할머니를 나를 감싸 안으셨다.
“그냥 둬라.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않냐.”
할머니는 아버지를 피해 할머니 등 뒤로 숨은 나를 보호하셨다.
잔치 집에 다녀오시면 늘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오셨다.
나는 집에 있는 나를 위해 사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알았다. 편치 않은 지팡이 걸음을 걸으시면서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손주를 먹이고 싶은 할머니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어서 먹어.”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하는 모습이 할머니에게서 받은 사랑 때문인지도 모른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할머니는 허리춤에 찬 전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서 주셨다. 아마도 굿을 하거나 잔치 집에서 장구를 쳐 주고는 받은 수고비일 것이다.
언덕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는데 흰 구름이 흘러간다. 마치 할머니가 흰모시 저고리를 입으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장구를 치시는 것 같다. 할머니의 웃는 미소가 보인다.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보인다. “할머니 땀 닦으세요.”라고 수건을 내밀었을 때 할머니는 아주 기분 좋아하셨다. 장구를 치시느라 힘이 드셨지만 손주가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았다. 그 할머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