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말씨 쓰는 사촌이 신기하게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산동네에 살면 다람쥐, 청설모, 뱀, 새 같은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면 별로 갈 데가 없었다. 산을 오후 내내 돌아다니기도 하고, 절에도 놀러 가고, 사람들이 산에서 굿을 하거나 제사 지내는 것을 구경하면서 놀았다.
동네를 떠나 멀리 가 본 것도 형들을 따라 해수욕장에 간다면서 따라나섰다가 길을 잃고 고생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 외에는 별로 없다. 껌 종이를 주으러 시내에 내려가고, 오리나무를 꺾어 만든 나무칼에 칼집(원단을 감는데 쓰이는 종이 대롱을 주워서 만들었다)을 만든다고 부산진시장까지 간 것이 전부였다. 소풍을 가도 학교 뒤 수정산에 올라갔고, 송충이를 잡으러 산으로 가도 우리 동네 옆이었다.
학교 친구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부잣집 아이들은 시험지 학습이다 과외를 받는다고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울린다고 해도 같은 애들끼리만 어울려 다녔다. 반장이나 부반장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끼리만 어울렸다.
아이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편 가름이 생겼다. 그나마 미화부장이나 체육부장과 같은 완장을 차야 겨우 어울릴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하게도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미화부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공부를 못하면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놀이에도 끼워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는 산동네 아이들은 시내에 내려가서 놀았다. 시내는 가라고도 하지 않았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냥 걸을 수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시내 구경은 마치 다른 세상에 놀러 간 것 같았다. 보는 것마다 신기했고, 먹는 것도 그랬고, 온통 구경할 것 천지였다. 그래서 우리끼리도 “촌놈”하면서 서로를 놀려댔다. 우리는 부산 촌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사촌이 여름 방학을 맞아 부산에 내려왔다. 나는 사촌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르고 살았다.
나와 처음 대면한 사촌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대영이니?”
“응.”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말씨가 달랐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씨였다. 나는 나중에야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서울 말씨’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보다는 말끝이 올라가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지. 저런 말도 있나 싶었다. 꼭 다른 나라 말을 듣는 것 같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도 이야기만 들었지 어디 있는가 몰랐다. 학교에 가서도 우리나라 지도만 보았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와 같은 나라는 생각지도 못했다. 서울 사람들은 저런 말을 들으면서 어떻게 살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참 신기했다.
“따다다다.”
난데없이 캄캄한 어두운 데서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사촌이 서울에서 가져온 총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다. 일본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가지고 노는 것은 ‘딱총’이라고 하는 화약총이었다. 화약을 넣고 방아쇠를 당기면 ‘빵’ 소리와 함께 화약 냄새가 매케 했다.
자동차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손가락 크기 정도의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그것도 안에는 텅 비었다. 그냥 자동차 모양만 있었다. ‘사이드카’라고 해서 양철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는데, 방바닥에 대고 뒤로 당겨서 태엽을 감았다 놓으면 앞으로 “앵~”하는 소리를 내며 갔다. 고무로 만든 말 장난감도 있었다. 말 허리에 길고 가느다란 고무 튜브를 연결해서 거기다가 바람을 넣으면 ’ 또각또각‘ 하고 앞으로 움직였다.
양철로 만든 계급장을 가지고 딱지치기하듯이 뒤집기를 해서 따 먹기도 하였다. 별도 있었고, 무궁화, 경찰 배지, 군인 계급장, 맹호부대마크, 백마부대마크. 문방구에서 작은 튜브에 들어 있는 투명한 본드 같은 것을 입에 넣어서 껌처럼 씹으면서 놀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불꽃이 사방으로 비치면서 요란한 총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 모두 신기해했다. 장난감 안에는 큰 건전지가 세 개나 들어 있었다. 사촌은 의기양양해하며 연신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우리는 또 촌놈이 되었다. 모르고 처음이면 무조건 촌놈이었다.
그 대신 우리는 서울 사람들을 ‘서울래기(서울내기)’라고 놀렸다. 서울 사촌은 언덕에 풀 사이에 나 있는 ‘깜디’도 몰랐다. 우리는 깜디를 먹으며 놀았다. 깜디는 풀 종류인데 껍질을 살짝 들추면 까만 분말 같은 것이 길게 뭉쳐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몇 개를 찾아서 먹고 나면 입 주위가 새까매졌다. 하얀 억새풀 같은 ‘필기’도 씹으면서 놀았다. 절 뒤 약수터에 가면 싱싱한 소나무가 많았는데 소나무에서 ‘솔 고동(솔순)’도 꺾어서 먹기도 하였다.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면 배가 불렀다.
서울 사촌에게도 신기한 게 많았다. 먹을 줄 모르는 것도 많았다. 아이들은 어떻게 먹는지 가르쳐 주었다. 산동네 아이들은 서울 사촌에게 뭘 가르쳐 준다는 것을 대개 자랑스러워했다. 이제 누가 촌놈이고 누가 서울래기인지 모르게 되었다. 아이들은 사촌을 데리고 온 산을 돌아다녔다. 동네 옆에 있는 절에 가서 큰 ‘인왕(仁王)’도 보여 주었고, 소나무 사이에 숨어서 청설모가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도 보여주었다.
절벽 밑에까지 살금살금 다가가서 독수리 집도 보여 주었다. 독수리는 갓난아기들을 채어 간다고 했다. 어떤 누가 밭일을 한다고 애기를 밭에 내려놨는데 독수리가 채어 갔다고 했다. 아이들은 독수리가 높이 날면 모두들 숨었다. 산 정상에 있는 돌탑에 올라가서 산 주위를 구경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산 정상에서 밑으로 마을 뒤쪽까지 길게 돌무더기가 길이 있었다. 돌무더기가 끝나는 무렵에서 아이들은 흙먼지를 날리면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이들은 마치 다람쥐 마냥 폴짝폴짝 뛰면서 내려갔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아이들 뒤에서 “아.”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이 뒤를 돌아다보니 사촌이 똥통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해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들 뒤를 따라 열심히 산길을 미끄럼을 타면서 내려오다가 그만 똥통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동네 옆에는 큰 똥통이 있었다. 동네 공중변소에서 퍼서 거기에 모아 놓고 밭에 거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똥통 위에 흙먼지가 살짝 덮여 있어서 맨땅인 줄 알고 그냥 폴짝하고 뛰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위치를 잘 알기 때문에 피해서 내려왔는데 그곳을 서울 사촌이 그냥 멋도 모르고 뛰었던 것이다. 마침 깊지가 않아서 다행이지 큰일 날뻔한 일이었다. 사촌은 무릎 아래까지 똥으로 범벅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촌은 똥통에 한가운데 서서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고 어떻게 할지 몰라해 했다. 대략 난감한 표정이었다. 냄새 때문에 코를 잡아야만 했다. 생전 처음 그런 일을 당했을 것이다. 거기에 똥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웃고 나서 우리는 개울가로 사촌을 데리고 갔다. 개울에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물이 고여 있는 개울가에 발을 담그게 하고 손으로 씻기기 시작했다. 옷도 벗겨서 씻어 주었다. 큰 바위 위에 옷을 널어놓고 옷이 마르는 사이 우리는 다시 냇가에서 가재를 잡기 시작했다. 작은 돌멩이를 들출 때마다 가재가 도망쳤다.
서울 사촌도 우리도 모두 속옷만 입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누가 촌놈인지 누가 서울래기인지 모르게 되었다. 산골짜기 한편에서 물을 첨벙거리면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서울 사촌이 서울 집으로 올라가고 나서 아무리 서울 말씨를 따라 해 보아도 되지 않았다. 몇 번을 그렇게 해 보다가 그냥 편하게 우리말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 말씨는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