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났지만 눈물 글썽이며 쳐다보았던 시간들.
“내일은 콜레라 예방 주사 맞으니까 모두 준비해 오세요.”
‘차렷, 경례. “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종례가 끝나자 아이들은 책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가방을 싸는 모습들이 모두 힘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여학생들은 집에도 가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어쩔 줄 몰라했다.
“얘, 불 주사 안 아프니?”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그러는데 엄청 아프데.”
“아냐, 하나도 안 아파.”
옆에서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들 듣던 남자아이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여학생들은 그렇게 말하는 남자아이를 쳐다보며 거짓말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야. 하나도 안 아프다니까. 주사 맞을 때 조금 따끔하고 안 아프데.”
여자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콜레라 예방주사’라고 해서 주사를 놓기 전에 소독을 한다고 알코올램프 불에 주사기 바늘을 짧게 데웠다가 주사를 놓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불주사’라고 했다. 주사라고 하면 그냥 맞겠는데, 불주사라고 하니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주사기 바늘을 알코올램프에 데워서 주사를 준다고 하니 얼마나 무섭겠는가. 초등학교 학교 다닐 때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 무엇인가 물으면 대부분 불주사라고 했다.
당시에는 콜레라, 이질, 뇌염, 장티푸스와 같은 전염병들이 유행했다. 불결한 생활환경 때문에 결핵과 더불어 전염병 걸려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양실조도 많았으며, 학교에서는 회충약도 나누어 주었고, 여름철에는 연막 소독을 한다고 차에다 연막소독기를 싣고 연기를 뿜으며 다녔고, 골목골목마다 “붕-“하는 연막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파리를 잡아서 작은 성냥 통에 담아서 학교에 내도록 했고, 쥐도 잡아서 꼬리를 잘라 학교에 내도록 했다. 어떤 아이는 꾀를 부린다고 파리 대신에 고무줄을 잘게 잘라서 넣어 성냥갑을 흔들어 보면 파리가 든 것처럼 했다가 선생님에게 들켜서 혼이 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많이 잡은 아이에게 상장도 주었다. 〈건강기록부〉라는 것이 아이들마다 있어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가지고 다녔다. 나도 중학교에 진할 할 때 그것을 가지고 중학교에 간 기억이 있다.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터에는 약장수들이 여러 가지 모양의 회충이 담긴 유리병을 전시해 놓고 바닥에는 회충과 관련된 사진을 펼쳐 놓고 회충약을 팔았다. 보기에도 징그럽고 끔찍한 사진들이 많았다. 기생충이 배에서 나온 사진도 있고, 수십 마리 수백 마리가 허옇게 뭉쳐 있는 사진도 있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다. 아이들이 앞자리에 앉아서 구경할 때마다 약장수 아저씨는 아이들을 쫓았다.
“애들은 가거라. 어서 집에 가.”
그러나 애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잠시 움찔거리기만 할 뿐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약장수 아저씨는 무슨 약인지는 모르지만 침을 튀겨가면서 열심히 약 선전을 했다. 회충약뿐만 아니라, 곪은데 바르는 고약이나 호랑이 연고, 이름도 모를 약들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채변 봉투를 아이들에게 나눠 줘서 집에 가서 변을 받아 오도록 했다. 그리고 그렇게 채변 검사를 해서 기생충이 발견된 아이에게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회충약을 나누어 주었다. 회충약을 받아서 먹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깨끗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채변을 받기가 싫어서 몰래 공중 화장실에서 변을 찍어다가 냈는데 기생충이 발견되어서 회충약을 먹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었다. 어른들 가운데는 속에 있는 회충을 죽인다고 석유를 먹는 일까지도 생겼다. 모두 무지(無知)할 때의 일이었다.
불주사를 맞는 날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은 기운이 없어 보였다. 평소 같으면 장난도 치고 웃고 하면서 등교를 하던 아이들이 풀이 죽어서 등교를 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불주사 생각뿐이었다. 아마도 밤새도록 잠을 못 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어떤 아이들은 그날 학교에 오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랬을까.
수업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쓰고 이야기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길은 계속 창밖으로 가 있었다. 조금 있으니 갑자기 복도 끝에서 “와!”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직감으로 불주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여학생들은 모두 겁먹은 표정이었다. 잠시 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수업 시간에 소리가 났던 반으로 몰려갔다. 쉬는 시간인데도 불주사를 맞고 있었다. 잠시 뒤면 우리 반이 맞을 차례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직 우리 앞에 한 반이 남아있지만 우리는 금방 우리 반으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이럴 때 열이라도 나서 아프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감기에 걸렸거나 몸에 열이 있으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었다. 참 아팠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할 때였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실 분위기는 여전히 조용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바로 옆 반에서 ‘드르륵’ 하고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마음으로 시간을 세고 있었다. 언제쯤 우리 교실에 올까? “오늘은 예방 주사약이 다 떨어졌으니 다음에 맞는다”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학생들 숫자를 알기 때문에 주사약을 충분히 가지고 왔을 것 같았다. 이럴 때 맨 끝 반이라도 되었으면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반에는 지금 얼마만큼 맞고 있을까. 이제 두 줄 정도 맞았을까. 아니면 이제 한 줄 맞고 있을까.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하얀 흰색 가운을 입은 양호선생님과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하얀 쟁반에 알코올램프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아이들 입에서 “아!” 하고 놀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콩닥콩닥 거리고 그렇게 가슴이 세게 뛴 적은 없었다. 책상 위에 쟁반을 내려놓은 양호 선생님은 알코올램프 뚜껑을 내려놓고 램프에 불을 붙였다. 순간 아이들은 숨을 멈췄다. 램프 불은 빨갛고 파란색을 내면서 조용히 타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불주사였다.
“자 창문 왼쪽 맨 앞줄에 않은 친구부터 한 명씩 왼쪽 팔을 걷고 앞으로 나오세요.”
“그리고 혹시 아픈 사람 있어요? 열이 나거나 감기 걸린 사람?”
“…….”
“없죠?”
열이 난다고 하고 나가고 싶었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손으로 이마를 만져 봐도 열은 없었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이마를 만져 보라고 해도 열은 없다고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 모두 이마를 만져 보고 있었다. 열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이들은 이제 체념한 상태였다. 용감하게 옷을 걷어서 팔뚝을 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옷을 느리게 걷으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한 명 한 명씩 자기 차례가 다가올 때마다 침이 말랐다. 어느새 종이 울렸는지 조금 전에 불 주사를 맞은 옆 반 친구들이 와서 창문으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하나도 안 아파.”
“우와! 얼마나 아픈데.”
복도에서 아이들은 장난으로 우리를 놀렸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낄낄거렸다. 나는 먼저 맞은 애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내 순서가 되었다. 팔뚝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어제 목욕을 했는데도 팔뚝이 허옜다. 주사기 바늘을 알코올램프에 달구는 것을 보고 순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짧게 따끔거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방금 주사를 맞은 곳을 쳐다보니 발갛게 되어 있었다. 먼저 주사를 맞은 친구들은 팔뚝을 서로 내 보이며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여자 아이들도 어느새 눈에 눈물을 잔뜩 머금은 채 웃고 있었다.
양호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기구를 챙겨서 교실을 나가셨다. 그리고 곧이어 뒷 반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와!”하는 함성이 터졌다. 우리는 쟤네들도 주사를 맞는구나 하면서 웃었다.
불 주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가장 겁이 많이 나던 때였다. 어쩔 줄 몰라해 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