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살았던 고아원, 밤하늘을 쳐다보며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학교 주변에는 고아원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경생원’, ‘서울고아원’, ‘호림천사원’ 이름을 가진 세 개의 고아원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경생원이 가장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현재는 동원 빌라, 동여자중학교, 정암 아파트가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
경생원은 크고 웅장했다. 지붕과 건물 모양이 마치 인도의 타지마할처럼 생겼고 온통 하얀 흰색을 하고 있어서 햇빛이 비치면 빛이 났으며, 고아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
고아원에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학교에도 한 반에 여러 명씩 다른 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받았다. 다른 아이들은 머리를 길렀는데, 고아원 아이들은 모두 민둥머리(빡빡이)를 하고 있었다. 고아원 아이들은 잘 웃지도 않았다. 그냥 대부분이 표정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려고도 하지 않았고, 놀지도 않았고,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녔다.
점심시간이 되면 고아원 아이들은 자리를 피했다. 우리도 그냥 꽁보리밥에 단무지나 마늘장아찌, 김치 정도의 반찬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러나 고아원 아이들은 그마저도 가져오지 못했다. 고아원 아이들은 늘 굶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우유급식이라는 것이 생겼다. 미군에서 나눠준 우유덩어리를 학교에서는 교사(校舍) 뒤편에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물을 붓고 끓여서 각 반에서 당번들이 가져온 주전자에 담아 나누어 주었다. 교실에서 한 컵 받아 마시는 우유 급식이 고아원 아이들에게 유일한 점심이었다.
아이들은 고아원 아이들을 함부로 상대하지 않았다. 잘못해서 시비가 붙거나 싸움이 있으면 고아원 아이들은 기를 쓰고 싸웠다. 덩치가 큰 아이도 작은 덩치를 가진 고아원 아이를 이기지 못했다. 악을 쓰고 눈물을 흘리면서 싸우는 고아원 아이들은 고아라는 설움을 싸움에서까지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녁이 되면 고아원에 불이 켜졌다.(산동네에는 그때까지 호야불, 남포 불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저녁에 고아원 건물은 더욱 희게 보였다. 희미한 전등불은 어두컴컴한 고아원 속을 어두침침하게 물들였다. 식당쯤으로 여겨지는 곳에서는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마도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저녁 시간만 되면 그 창문을 타고 비릿한 냄새가 밖으로 풍겨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고아원은 다시 어둡고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고아원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아원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고아원 아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친구들이 생각났다. 내 친구 상철이, 진수, 봉우, 그리고 새침 떼기 희숙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순옥이도 생각이 났다. 친구 상철이는 참 성격이 밝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주눅 들거나 다른 아이들을 피해 다니지 않았다. 늘 잘 어울렸고, 장난도 잘 쳤고, 도시락을 같이 나눠 먹기도 하였고, 장기자랑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웃기기도 하였다. 진수는 싸움을 잘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비해 키도 컸고, 다른 아이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조금 야위고 공부를 못하는 것을 빼놓고는 다른 아이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 싸우다가도 ‘진수 온다!’는 소리만 들리면 싸움을 그쳤다.
어느 날 진수에게 물었다.
“저녁 먹고 나면 뭐 하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해.”
“정말?
“응.”
“……”
“그냥 저녁 먹고 나면 다 누워 있어.”
“잠자?”
“아니, 잠은 안 자.”
“그럼?”
“그냥, 그렇게 누워 있어.”
나는 궁금해졌다. 왜 아무것도 안 하지. 이야기도 안 할까? 우리는 그래도 아래 동네에 내려가서 만화도 보고 텔레비전도 보는데 말이야. 붕어빵도 사 먹고 말이야. 그러나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언젠가 다른 아이에게 전해 들었다. 고아원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그냥 잠자리에 누워 있는다고 했다. 불이 꺼진 고아원은 캄캄하다고 했다. 그냥 누워서 창 문으로 밤하늘만 쳐다본다고 했다. 고아원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아이들은 이불을 뒤 집어 쓰고 운다고 했다. 크게 소리는 못 내고 훌쩍거린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이 많은 형들이 “조용히 해”라고 고함을 친다고 했다.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이불이 들썩인다고 했다. 가만히 소리 죽여 운다고 했다. 특별히 ’ 어머니 날‘ 같은 날에는 우는 아이들이 더 많다고 했다. 추석 명절도 그렇고, 설 명절에도 우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저녁때가 되면 산동네에는 매캐한 나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무판자로 벽이나 흙으로 지어진 담벼락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풍겨 나왔다. 바깥에 나가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호롱불 유리관을 사러 동네 가게에 심부럼 가는 아이, 동네 밑에 있는 가게로 석유를 사러 가는 아이, 쌀가게로 봉지쌀을 사러 가는 아이, 동네는 저녁이면 부산했다.
아이들은 방에 앉았어도 아무 할 게 없었다. 방이라고 해봤자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한 평 정도 되는 부엌 겸 아궁이가 있었고, 부엌 바닥보다 한 뼘 정도 높이로 방바닥이 있었다. 벽에는 신문지로 벽을 발랐고, 검은 그을음을 내면서 호롱불이 빨갛게 불을 밝혔다.
머리를 광목으로 힘껏 싸맨 어머니는 양푼이 그릇에 밥을 담았다. 저녁에도 국수를 먹는 일이 많았지만 오늘은 보리쌀로 지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따뜻한 밥이었다. 아직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한 때였다.
그때 슬쩍 부엌문 곁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어머니가 '누군가?' 하시면서 부엌문을 나가셨다. 그리고는 다시 들어오셔서 솥에서 보리밥을 한 그릇 퍼서 다시 나가셨다. 나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잠시 뒤 어머니는 들어오셨는데, 손에는 옥수수빵이 들려 있었다.
“요 밑에 있는 고아원 애가 와서 밥 좀 달라고 하네. 옥수수빵 하고 밥하고 좀 바꿔 먹을 수 없나 하길래. 그래서 그래라 했다. 빵은 필요 없다고 해도 그냥 주고 가네.”
그러시면서 노란 옥수수 빵을 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어머니가 바깥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실 때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방과 부엌문이 두 어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다 들렸다. 벽 뒤에 이웃집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다 들릴 정도였다.
나는 수저를 놓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서 언덕 밑을 내려다보았다. 저 밑 비탈길로 누군가가 바쁘게 내려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한 고아원 아이였다. 나는 큰 소리로 그 아이를 불렀다.
“상철아!”
“상철이 니 맞제?”
내려가던 아이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상철이였다. 어두웠지만 상철이가 분명했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상철이가 손을 번쩍 들어서 크게 한번 휘저었다.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상철이는 어머니가 양푼이에 담아 준 밥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나도 크게 손을 휘저었다. 상철이는 다신 한 번씩 웃더니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아원 아이들은 밥이 먹고 싶으면 산동네로 올라와서 옥수수빵과 밥을 바꿔 먹는다고 했다. 학교 반 아이들 중에는 조금 생활이 괜찮은 아이들은 고아원 아이들이 가져온 옥수수 빵과 밥을 바꿔 먹기도 했다.
“엄마. 내일 상철이 데리고 올게요. 밥 많이 해 놓으세요.”
나는 어서 빨리 내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나도 상철이처럼 창문 바깥으로 하늘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