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시내구경

시내에 놀러 가는 것이 큰 구경거리였던 아이들의 이야기.

by 이대영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집에 가서 고구마나 국수나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동네 공터에 모두 모여들었다. 산동네 아이들은 깡통차기, 말뚝박기, 씨 차기, 비석치기, 다마(구슬) 치기를 하면서 놓았다.


좀 심하지만 편을 갈라서 ‘까기(발로서 상대편을 차면서 노는 놀이)’도 하고 오리나무를 꺾어서 만든 나무칼로 칼싸움도 하고, 연탄재를 던지면서 싸우기도 하고, 새총 싸움도 하고, 학교 다녀와서 노는 것 외에는 별 다른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학교 숙제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 먹고 학교에 갔다가 벌을 서는 일도 많았다. 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가 한 것을 보고 베끼기도 하고 공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깡통 차기’가 시작되었다. 술래가 정해지자 술래가 나무에 엎드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눈을 감고 크게 외쳤다. 아이들은 그 사이에 풀숲이나 바위, 비탈진 언덕 뒤로 뛰어가서 얼른 몸을 숨겼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다 외친 술래가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다 숨었나. 찾으러 간데이.”

아이들이 모두 숨어서 숨을 죽인 채 술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조심조심 깡통을 쳐다보면서 아이들이 숨었을 것 같은 곳을 살피던 술래가 크게 외쳤다.

“명호 봤다.”

나무 뒤에 어설프게 몸을 숨긴 명호가 들키고 말았다. 명호가 깡통으로 뛰어갔지만 깡통 가까이에 있던 술래가 명호보다 먼저 뛰어가서 깡통에 발을 대었다. 때로는 달리기가 빠른 친구들은 그렇게 들켜도 술래보다 먼저 빨리 뛰어가서 깡통을 세차게 멀리 차 버리며 살기도 했다. 그러면 술래가 깡통을 주워서 다시 제자리에 놓는 사이에 들켰던 친구는 몸을 다시 숨겼다. 그 사이에 다른 아이들도 다시 다른 좋은 곳으로 가서 얼른 몸을 숨겼다.


“통이야!”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번에는 병우가 깡통을 세차게 멀리 차 버렸다.

술래가 아이들을 찾으려다가 깡통 차는 소리에 놀라 뒤를 쳐다 보고 다시 깡통을 주으러 뛰어갔다. 그러자 들켜서 풀이 죽어 있던 명호가 화색이 되어 좋아하면서 몸을 숨기려고 뛰어갔다. 조금 있으니까 이번에는 다시 “찌 똥.” 하면서 웅태가 소리쳤다. 술래가 아이들을 찾으러 잠시 깡통에서 멀어진 사이에 명호가 술래 몰래 뛰어 와서 깡통에 발을 대면서 ‘찌 똥’하고 외친 것이다. 명호는 더 이상 이제 숨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아이들이 하는 것을 이제는 재미있게 지켜보면서 놀면 되는 것이었다.


얼마큼 놀았을까. 깡통 차기에 싫증을 느낄 무렵 누군가가 외쳤다.

“야! 우리 시내 구경 안 갈래?”

아이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우리 시내에 가서 조금만 놀다 오자.”

“알았어. 내 집에 금방 갔다 올게.”

한 친구가 집으로 뛰어가자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후다닥 집으러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집으로 뛰어가서 부엌문을 한 벌 열어 보고는 다시 아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은 언제 왔는지 금방 다 모여 있었다. 그리고 먼지를 자욱하게 날리면서 미끄러지듯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 위에서 노는 게 싫증이 난 아이들은 가끔 산을 내려와 시내로 놀러 갔다. 시내에 놀러 간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따라나섰다. 동생들 중에는 삼, 사십 분 남짓 걸어야 하는 것도 모르고 형들을 따라가겠다고 울면서 떼를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형들이 막 빠른 걸음으로 부리나케 골목길로 도망치면 동생들은 울면서 형들을 쫓아왔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마치 신세계를 보러 가는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오면 모든 게 신기해 보였다. 대낮인데도 환하게 전기가 켜진 가게도 있었고, 큰 도로에는 버스랑 전차도 다녔다. 버스는 앞문 뒷문이 있었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놓아서 힘들어 보였다. 댕댕 소리를 내면서 전차가 지나갔다. 기차는 전차 길 위 공중에 걸린 전깃줄에 기다란 막대기를 걸치고 레일 위를 지나다녔다. 우리는 전차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이면 엎드려서 전차 레일 위에 귀를 갖다 대었다. 그러면 레일은 ‘드륵 드륵’ 하는 소리를 내었다. 위험은 했지만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차를 쳐다보면서 그 소리를 귀로 들었다.


아이들은 자석을 만든다면서 전차 레일 위해 못을 올려놓기도 했다. 전차가 밟고 지나간 못은 손으로 잡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아이들은 뜨겁게 된 못이 자석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자석은 되지 않았다. 전차는 부산에서는 1968년 5월 20일 자로 운행이 정지되었다고 한다. 전차를 타고 동래 온천장에 있는 동물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동물원에서 모노레일처럼 생긴 것을 타고 대나무밭 사이를 지나가기도 했다.


놀꺼리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병 따꿍(뚜껑)도 가지고 놀았다. 병 따꿍은 전차 레일 위에 올려놓으면 전차가 지나가고 나면 납작해졌다. 우리는 그것들을 모아서 ‘병 따꿍 찍기’를 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병 따꿍을 각자 내어서 모아 놓고 돌멩이로 쳐서 원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가지는 그런 놀이였다.


껌 종이도 훌륭한 놀거리가 되었다. 당시에는 ‘셀레민트’, ‘풍선껌’, ‘후레쉬민트’, ‘황금박쥐’와 같은 껌들이 있었다. 우리는 생긴 모양과, 줍기 어렵고, 귀한 정도에 따라서 급을 매겼다. 그 급에 따라서 다른 껌 종이와 바꾸면서 놀았는데, 어쩌다가 길에서 귀한 껌 종이를 줍는 날에는 마치 횡재를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시장 통 안에는 ‘수정극장’이라는 극장이 있었다. 한 번은 서울에서 내려온 외삼촌을 따라서 들어가 봤는데, 그때 내가 봤던 영화는 〈에밀레종〉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종을 만들기 위해서 스님이 시주를 하러 다니는데, 한 가난한 집에서 시주로 드릴 것이 없자. “이 아이라도 데려가시오.”라고 하였고, 그 때문에 끓는 쇳물에 아이를 집어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에미 때문에)’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 신종에 얽힌 전설). 어둡고 냄새나는 영화관과 함께 붉은 쇳물이 가득한 장면은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다.


시내 구경을 마치고 산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의 손에는 껌종이랑 길에서 주운 병 따꿍이 들려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면서도 아이들은 길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나 귀한 껌종이가 어디 떨어져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쓰레기통도 뒤졌다. 날은 어두워져 오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산 위의 우리 동네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깜깜하게 어둠 속에 파묻혀 있을 뿐 산동네는 보이지 않았다.


땀에 절었는지 고무신이 자꾸 벗겨졌다. 발에 흙을 묻히고 다시 고무신을 신었다. 친구가 고무신을 벗어서 마치 밤에 동네를 순찰하는 야경꾼처럼 마주치며 딱딱 소리를 내었다. 저 멀리 산동네로 올라가는 꼬불꼬불한 길이 보였다.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산으로 올라갔다. 다음에 또 언제 시내 구경을 갈지 몰랐다. 시내에는 귀한 껌 종이도 있었고 환한 전기불도 있었다. 우리가 사는 산동네는 밤이면 깜깜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