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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울었다.

망할년 때문에 또 울었다.

by 이대영

나이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고 한다. 이유를 물어보면 모두 각양각색이다. 누구는 몸이 고단해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내 신세야” 하다가 신세타령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누구는 아무도 내 속을 몰라줘서 눈물을 흘린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이유라도 알면 참 다행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 이유 없이 혼자 훌쩍거릴 때가 있다. 갑자기 밀려오는 서러움에 눈물을 쏟는다. 누가 보면 이상하다 하겠지만, 눈물 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유라도 알면 누구한테 속 시원하게 눈물 흘리는 이유에 대해서 하소연이라도 하겠건만, 이건 누구 말대로 답이 없다.


나이가 들면 갱년기라고 하는데, 갱년기가 와도 시시덕거리면서 잘만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누가 정말 이상한지 헷갈릴 정도다. 그렇게 말하면? 젊은 처자가 이유 없이 눈물 흘리면 뭐라고 해야 할까? 갱년기 빨리 왔다고 말을 해야 할까? 그건 벼락 맞을 소리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청순 발랄한 처녀에게 갱년기라니,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맞을 봐야 정신 차릴 소리다.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그럴 때가 있다”라고 한다. 갱년기 증상이라면서, 이런저런 의학적인 이유를 들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듣고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개운치 않다. ‘그럴 때’라는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디 아프신 데는 없지요?”라는 말에 “예…”하고 일어섰지만, 속은 편치 않다. 처방을 하지 않아서 진료비는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덕분에 돈은 굳었지만,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다.

말은 거칠게 하지만 심성은 착한 영자에게 말을 하니 역시나 마찬가지다. “망할년, 눈물 흘릴 시간이 어딨어? 먹고살기 바쁜데.” 그 말에 나도 전화기에 대고 쏘아댔다. “알았어! 이 망할년아.” 두 망할년은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괜히 전화했다 싶다. "망할년, 이야기 좀 들어주면 어디 덧나." 망할년이 내 속을 그렇게도 모른다.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이럴 때 이야기 들어주는 게 친구잖아. 망할년 때문에 또 속이 상한다. 그 통에 꺼이꺼이 또 눈물 한 바가지를 쏟는다. 그런데 괜찮다. 영자하고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며칠 있으면 또 두 망할년이 만날 건데,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뭐가 좋다고 매일 만나는지 모르겠다.


한바탕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조금 낫는 것 같다. 눈물이 약인가? 아니면, 그 망할년 때문인가? 웃음이 나온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고 하던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에 혼자 미친년처럼 또 웃었다. 우울한 마음이 사라졌다.


눈물은 ‘누군가를 위해서 흘리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애달픈 사랑의 눈물이다, 그냥 흘리는 눈물은 없다고 한다. 이유가 있고, 뜻이 있다고 한다. 아마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눈물 없이 감정을 표현하라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로미오와 쥴리엣은 눈물 없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내게 지금 딱히 누굴 사랑할 사람이 없다면? 그건 나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나에 대한 연민,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눈물샘을 왈칵 열게 한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흘렸던 연애 시절의 눈물과는 다른 것이다. 오랫동안 예열되었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점화되어서 폭발한 것이다.


누가 이런 일을 예상할 수 있을까? 사랑은 예견되지만, 이건 시간과 날짜도 알려 주지 않는다. 무방비 상태로 그냥 맞을 수밖에 없다. 아마 그 속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사랑이 그리운 사람은 사랑이라는 눈물이 터졌고, 슬픈 감정을 쟁여두고 산 사람은 일순간 슬픈 감정이 화산처럼 폭발했을 것이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고 싶은 눈물이.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싶은 눈물이 터졌을 것이다.


당신에게 흐르는 눈물을 가만히 두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이유가 없다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당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다.


이해해 달라고 말할 필요 없다. “왜 울어?”라고 말하면 “그냥”이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구구절절이 말할 필요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들이 알고 있는 처방만 내놓을 것이다. 너무 흔한 레퍼토리 말이다. “나도 그래”, “그때는 다 그랬어.” 별 쓸데없는 말이다.


인생을 우리보다 오래 산 동네 어른이 말씀하셨다.


“세월이 약이여~, 나는 이제 눈물도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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