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헤어지자

난, 이제 너르 보낼 거야.

by 이대영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다. 잊을만하면 또 끄집어내고, 버렸다 생각하면 어느새 내 손 한가득 다시 쥐어져 있다. 나는 지금 상처를 붙들고 있다. 결코 돌이킬 수 없고, 다시 이전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처의 파편을 한 움큼 쥐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겐 너무 컸다.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이기에 감정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버리고 싶었다. 매몰차게 "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아니면 너무나 불쌍한 내 감정은 나보다 더 아파 보였다.


나는 너에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네가 한 것이라곤 나를 사랑한 것 밖에 없다. 같이 웃고 같이 울면서 나보다 더 크게 울고, 나보다 더 크게 웃었던 게 너였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그런 허풍도 없었다. 나는 안다. 네가 나를 위로하며 나와 같이 함께 했다는 것. 네가 나보다 더 크게 울었던 것은 내가 더 울까 싶었던 거였다. 더 크게 기쁘게 하기 위해 나보다 더 크게 웃었던 것이다. 미안해. 난, 네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줄 알았다. 기억하니 네가 나보다 더 울었다는 것.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 때, 네가 울음소리를 죽여가며 가슴을 붙잡고 울었다는 것.


미안해, 너를 너무 미워했다. 나 혼자 고통하는 줄 알았다. 난, 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난, 너를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그게 이유고, 그게 변명이었다.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 가는 것도 네 덕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고마운 것이다. 넌, 나를 지켰고, 버티게 해 줬다. 긴 터널의 어둠에서 조금씩 걸어 나올 수 있게 된 것도 네 덕이다. 너는 나를 위해서 터널의 문을 열었다. 이제는 숨지 말고 그만 나오라고. 그리고 너는 나에게 음악을 들여줬어. 바닷가가 보였어. 흰 백사장이 보였고, 파도가 밀려오는 멋진 광경이었어. 파도가 사르르 밀려와서 내 발 밑에서 사라졌어.

srUTJMuu0gjVuwp83Q4C_on_cizucu.jpg

사람들은 기억하려는 것과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기쁘게 한다. 기쁜 것을 생각하면 기쁜 기억들이, 슬픈 것을 생각하면 슬픈 이야기가 가슴에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밤 깊도록 생각에 잠긴 적도 있었다. 비 오는 날 멀겋거니 하늘을 쳐다보며 쏟아지는 비를 본 적도 있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가슴은 쿵쿵거렸다.


내가 생각한 게 한 가지 있다. 모든 기억을 지우는 훈련이다. 그렇게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쉬웠다면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겠지. 너를 미워할 일도 없고 말이야. 어쩌면 기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상처라는 말도 그렇다. 그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나는 원래부터 강했다고. 나는 뭐든지 쉽게 잊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건망증도 심하고, 기억은 더 이상이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난 잠도 잘 자고, 꿈나라도 잘 가니까.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네 동정심을 바라서 아픈 채 한 것뿐이다. 난 이기적이다. 난 나 밖에 모른다. 난 원래부터 혼자였다. 누가 옆에 오는 게 싫었다. 감정, 불쌍하다, 가엷다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 약하게 하는 말은 하지 말기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차차 잊어지겠지. 사람은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다르지 않다. 아픈 상처랑 지워버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오래 살 거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헤어지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줘. 난 너를 잊지 않는 다는 것. 넌, 내 오랜 상처니까.



(이전글)https://brunch.co.kr/@brunchs1wa/267 결을 따라 사는 것.

(다음글)https://brunch.co.kr/@brunchs1wa/271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구독]과 [라이킷♥] 부탁드립니다.


#잊지못할감정 #상처와회복 #감정의파편 #마음의여정 #사랑과그리움 #내면탐구 #자기돌봄 #감성에세이 #소중한기억 #브런치에세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