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더라도 한번 살아보자.
그래 그렇다.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다. 날마다 맑은 날을 기대하지만 갑자기 내린 소낙비는 급류를 만들고, 퐁퐁 거리며 호숫가에 떨어지던 빗방울은 한 치 앞을 가리며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못하게 한다. 방금 걸어왔던 길은 물길이 되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질퍽거렸다. 겨우 헤집고 걸어 나온 길은 길이 아니었다. 그냥 숲 한가운데 있는 텅 빈 공터였다. 이슬이 맺히던 풀잎은 그냥 조용하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몸을 내어 준채 아무 말이 없었다.
말하는 날보다 말 못 하는 날들이 더 많다. 모두 꿈을 말하지만 현실은 꿈을 거슬러 멀어져 간다. 암울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 모아 기도하지만, 소리는 허공을 돌아 다시 내 무릎 옆으로 떨어진다. 깨어진 창문 틈으로 스며든 빛에 고개를 들지만, 푸드덕하고 날아가는 비둘기 소리에 두 손들어 훠이 훠이 소리만 낼뿐 날아가는 비둘기를 쳐다보면서 어떻게 하지 못한다. 어쩌면 꿈을 좇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지만, 비둘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마음을 모으지만, 귀는 창문 틈으로 가 있다. 작은 새소리에 다시 마음을 모아 본다.
우리 모두 그런 것 아닐까? 수도자처럼 그런 모습은 아니더라도,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모두 같은 것 아닐까? 모양은 조금 엉성해 보이더라도, 행색은 남루하더라도 그게 그 사람의 진심이라면 들어지지 않을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면 어린아이가 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배냇저고리 젖내가 필요하면 엄마 젖을 옷에 묻혀서라도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들. 세상 사람들 마음은 다 그렇다. 인색하고 야박한 사람도 알고 보면 모두 같은 생각, 같은 사람들이다.
좀 틀리고 어그러지면 어때, 부끄러움을 딛고 일어설 수만 있다면 희망이 있다는 것 아닌가. 희망의 출발점은 희망이 아니라 출발선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출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뛰어가다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현자가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 아니다. 현자는 다독이기만 할 뿐 나 대신 나서지 못한다. '어떻게 할까요?'라는 물음에 '이렇게 하라'라는 말만 할 뿐이다. 현자도 처음부터 현자였을까? 그도 많이 넘어지고 다치고, 많이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자라는 것이다.
생활이 녹록지 않다. 팍팍하다고 말한다. 아침에 흘린 눈물은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다. 누가 볼까 들킬세라 방문을 닫지만, 울음은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어느새 새 나간다. 한숨은 벽을 타고 잔뜩 물기 머금은 솜처럼 가슴 한 구석으로 무겁게 떨어지고, 숨 쉬는 것조차 버겁어 가슴을 두드리지만 시퍼런 멍은 살을 물들이기만 할 뿐 눈물이 가시지 않는다. "누가 이것 좀 가져가라"고 소리치지만, 그건 내가 나에게 하는 소리일 뿐, 눈물로 바뀐다.
그렇더라도 한번 살아보자. 살면 살아지는 것. 엄마 핏값은 해야지. 인생 기구하다고 말하면 엄마 속을 썩게 만드는 거다. 길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라. 지금 사는 게 어떤지. 열이면 열 사람, 다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나만 그렇다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자. 할머니가 그러면 괜찮은 줄 알면 된다. 어릴 적 장독을 깼는데, 할머니가 깨어진 장독을 들어내고 된장을 퍼더라. 괜찮다고, 먹을 만하니 나가서 놀라고. 한 번 깨져 봤으면 괜찮다. 이제 거기서 놀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놀면 안 된다는 것 하나는 배웠잖아. 이제 나가서 놀아야지, 웃으며 놀자. 나만 그런 것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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