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함정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지지 않는 흙탕길 곳곳에 함정이 파져 있었습니다.

by 이대영

비는 어젯밤부터 세차게 내리더니 아침이 됐어도 그 칠 줄 모르고 계속 쏟아졌다,

천장에서 비가 새자 받쳐 놓은 그릇에서는 연신 “퐁! 퐁” 소리를 내며 그릇 바깥으로 물을 튕겨냈다.

“뭔 놈의 비가 이렇게 쏟아진다냐?”

비 오는 날이면 일하러 나가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아버지는 연신 바깥을 쳐다보면서 역정을 쏟아냈다.

“아, 비가 안 와야 일하러 나갈 거 아녀…….”

마당 구석에 있는 개 집 안에서 황구도 가만히 엎드려서 내리는 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황구야! 내 말이 맞제, 안 그러냐?”

그러자 황구가 고개를 들고 꼬리를 흔들며 “컹 컹” 소리를 냈다.

집 앞에는 누런 황토물이 길 위로 출렁거렸다. 지나는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물을 헤치며 걸었는데 신발이 물에 잠겨 마치 물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그냥 놓칠 동네 애들이 아니었다.

동네 개구쟁이로 소문난 창식이와 준호와 동호가 조금 전부터 비를 맞으면서 길 위에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너무 깊게 파지 마.”

“왜?”

“넘어지면 다친다 아이가.”

“그래 맞다, 안 다치게 해라.

아이들은 지금 함정을 파고 있는 것이었다.

별 뾰족하게 놀 거리가 없는 아이들은 비가 오면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놀 거리를 찾았다.


아이들이 판 구덩이는 흙탕물에 덮여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는 구덩이에 빠져서 낭패를 볼 판이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거기에 발이 빠져서 넘어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길옆에 있는 처마 밑으로 몸을 숨기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과연 누가 걸려 넘어질 것인가? 아이들의 눈은 방금 파 놓은 구덩이에 가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동네 아저씨들 몇 분이 지나가고 아주머니들도 지나가고 그럴 때마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지만, 번번이 구덩이를 지나쳐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아이들 눈에 남철이 아버지가 나타났다.

남철이 아버지는 똥장군 지게를 지고 비를 맞으면서 아이들이 파 놓은 구덩이 길로 걸어오고 있었다.

“야……, 빨리 가서 말려야제.”

“넘어지면 우짤라꼬?”

“설마….”

아이들은 등에 똥장군을 지고 나타난 남철이 아버지가 구덩이에 빠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빠지기를 바라지 않다니 참 이상했다. 친구 남철이 아버지라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정말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똥장군을 지고 지게 작대기를 앞으로 하고 걷던 남철이 아버지가 갑자기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그만 옆으로 쿵하고 넘어지고 만 것이다.

“아이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들이 말리려고 몸을 일으킬 새도 없이 넘어져 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등에 지고 있던 똥장군이 넘어지면서 똥장군에 담겨 있던 똥이며 오줌이며 오물이 마치 하수구 물 넘치듯이 쿨럭 거리면서 길바닥 위로 쏟아지고 말았다.

길은 삽시간에 똥물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내리는 비 때문에 냄새가 멀리 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길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집들은 그 냄새를 고스란히 맡아야만 했다.

“이게 무슨 냄새고?

“이기 뭐꼬?”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오매? 남철이 아버지 아인교?”

“우짜다가 이리됐소?”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해 하며 서로 물었다.

“아이고, 물구덩이에 빠졌는가봬?”

“누가 여기다 물구덩이를 만들었노?”

“아들아이가?”

어른들은 그 물구덩이를 만든 범인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이노무 자슥들 잡히기만 해 봐라.”

남철이 아버지는 씩씩 거리며 팔을 걷어 부치고 여기저기 살폈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한 것은 남철이 아버지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냄새는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맡아야만 했다.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저녁 해질 무렵에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자 물이 빠지고 길이 보였다. 그 길 한가운데 아이들이 파 놓은 구덩이가 보였다. 남철이 아버지가 똥장군을 지고 가다가 발이 빠졌던 구덩이였다.

그 구덩이가 작은 돌멩이로 가득 메꾸어져 있었다.

누가 그랬을까? 구덩이는 더 이상 파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게 메꾸어졌다.

그리고 그 후로는 비가 와도 더 이상 길에서 넘어지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아이들 놀이가 하나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