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석을 부리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줄을 섰습니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선생님의 구령 소리에 코흘리개 아이들이 씩씩하게 발을 맞추어 걸음을 걸었다.
“앞으로 나란히”
“바로”
“열중쉬어”
“차렷”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떼를 쓰거나 응석을 부리던 아이들이 마치 군인들처럼 움직였다. 앞으로 나란히 해서 줄을 맞추어 보지만 삐딱 삐딱한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추운 겨울 끝머리에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열린 입학식 풍경이다.
아이들은 모두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았다. 그리고 그 손수건 위에 학교에서는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등 비닐로 모양을 낸 반 표시가 달렸고 그 모양과 색상에 따라 아이들은 같이 모였다.
그런 아이들 앞에 처음 보는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바로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아이들 앞에는 턱수염 면도 자국이 생생한 남자 선생님이 담임으로 나타난 반도 있었고, 또 다른 반에는 여선생님이 예쁜 미소를 지으며 줄 앞에 섰는데, 아이들은 여선생님이 담임인 아이들을 모두 부러워했다.
남자 선생님은 무뚝뚝해 보였고 무서워 보였다. 어떤 여자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울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을 떼어 놓고 부모님들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빼고 아이들을 살폈다. 아직 겨울 끝자락이라 날씨가 쌀쌀했다. 발을 동동 굴러 보지만 차가운 것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추울지 애가 탔다.
“뭔, 이야기가 저렇게 길담…….”
부모님들은 단상에서 일장 훈시를 하는 교장 선생님이 야속해 보였다. 발을 동동 굴리고, 손을 비비며 서 있는 애들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런 입학생들 옆에는 재학생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서 같이 서 있었다. 갓 입학한 아이들의 눈에 그들은 마치 학교생활을 많이 한 대단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걔 중에는 친오빠도 있고, 친 형도 있었고, 하다못해 같은 동네에 사는 형이나 누나들도 있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이나 부모들 모두 크게 박수를 쳤다.
말은 하지 않지만 추위에 더 떨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큰 박수가 나왔으리라 생각된다.
그제야 아이들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다시 다른 순서가 있는 동안에 아이들은 언제 사귀었는지 옆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발걸음을 교실로 옮겼다. 생전 처음 앉아 보는 ‘자기 자리’였다.
아이들은 책상이 신기해 보였다. 물론 집에 앉은뱅이책상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앉아보는 책상이었고, 두 사람이 같이 앉아 사용하는 나무 책상은 아이들만의 공간이고 아이들만의 세계였다. 그런 책상의 정중앙에는 길게 금이 그어져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 금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생소한 것은 선생님과 책상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반이 운영됨으로 아이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같이 짝이 되어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장난기 많은 남자아이들도 여자 짝꿍 앞에서는 장난을 치지 않았다.
쭈뼛쭈뼛 거리는 것은 남자 아이나 여자 아이나 모두 똑같았다. 서로 눈치를 보는 시간이 길었다.
“옆에 친구와 인사합시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서로 쳐다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볼이 빨개졌다.
몇 달 전에 새해에 학교에 입학할 아이들이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통장 아저씨가 입학(취학) 통지서를 전해 주었다. 부모님들에게는 마치 ‘올 것이 왔구나’하는 날이었다. 학교에 간다는 것이 별다른 일은 아니지만 투정 부리고 떼쓰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취학통지서를 쳐다보고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그게 무엇인지 몰라 “엄마 그게 뭔데?”라고 물었지만 엄마는 그냥 아이만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저녁 밥상머리에서는 오늘 낮에 받은 취학통지서가 화제가 되었다. 먼저 학교에 다니고 있는 형이나 누나, 언니가 있는 아이들은 형님, 누나, 언니가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다. 불안해할 필요 없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엄마는 미리 다른 집에서 입다 작아서 보관하고 있던 교복(당시에는 교복을 입는 것도 귀했다)을 얻어서 이곳저곳을 손봐서 깨끗하게 씻어서 다리미질을 해서 준비해 놓으셨다. 아이는 몇 번이고 교복을 입어보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땅바닥에 나무 작대기나 돌멩이로 글 쓰는 연습을 하였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아이들은 글을 잘 쓰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형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동안 연습한 것을 보여주며 은근히 자랑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핀잔이나 꿀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서 형이 글 쓰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자기 이름 석 자를 쓰게 되면 최고의 자랑이었다. 벽이든 종이든 빈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이름과 글 쓰는 것으로 도배를 하였다. 그런 아이들이 많으면 온 동네의 집 벽에는 흰색 석필로 쓰인 이름이나 그림으로 가득 찼다. 가끔 부모님들 중에는 글을 쓸 줄 모르는 분들도 계셨다. 동네 어른들도 가끔은 이제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 시골에서 보내온 편지를 들고 와서는 편지를 읽어 달라고 하거나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면서 어른들이 불러주는 대로 편지를 썼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어른들이 편지를 가지고 와서 읽어 달라고 할 때마다 아이들은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