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집들이 헐리고 기다란 길이 생겼습니다.
산동네 아래에서 ‘꾸르릉, 꾸르릉’ 거리며 뭔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소리 나는 쪽을 내려다보니 하얀 흙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지?…….’
아이들은 궁금해하며 산 아래로 내달렸다.
곧 금방 아이들 눈에 들어온 것은 큰 포클레인이 큰 삽으로 육중한 바위를 캐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불도저가 굉음을 내면서 길을 내고 있었다.
“아저씨! 여기 뭐하는데요?”
아이들은 공사하는 아저씨에게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산복도로 만든다.”
“산복도로요?”
“그래, 산복도로 말이다.”
“산복도로가 뭐예요?”
“아, 산복도로 몰라. 산에 생기는 길 말이야. 차도 다니고 소방차도 다니고, 얼마나 편한지 몰라? 또 집에 불나면 빨리 와서 불도 끄고 말이야.”
“아, 그게 산복도로예요?
“오냐.””
아이들은 그제야 산복도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자동차도 다닌다고 한다. 나중에는 시내에서 볼 수 있는 버스도 다닌다고 한다. 그러면 힘들게 시내까지 내려가서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웃천막 사람들에게는 크게 소용 있는 일도 아니었다)
더 좋은 것은 그 길로 소방차들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불이 나면 시내에서 소방차가 올라오는데, 소방차들은 좁은 골목길을 어렵게 올라왔는데, 그나마 길이 있으면 다행인데 길이 없으면 불도 끄지 못하고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만 울리면서 불나는 것을 그냥 지켜봐야만 했다. 소방관 아저씨들은 삽이랑 갈퀴랑 들고 뛰어와서 불을 끄고 소방차에 달린 호스로는 거리가 멀어 불을 끄지 못했다.
지난겨울에도 벌써 세 번이나 불이 났었다. 사람들은 불도 끄지 못한다고 소방관 아저씨들에게 화를 냈다. 소방관 아저씨들은 차가 들어갈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하소연했다. 사람들은 길에 줄을 지어 양동이로 이런저런 그릇으로 물을 나르면서 불을 껐지만 불을 더 이상 다른 데로 번지지 않게만 할 뿐 제대로 불을 끄지 못했다.
산동네에서 보면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불을 깜박이며 올라오는 소방차 모습이 보였다.
꾸불꾸불한 길을 올라오는 소방차 모습은 산동네 아이들에게 또 다른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어여들 비켜, 다쳐.”
아이들 앞으로 큰 삽이 달린 포클레인이 다가왔다. 포클레인이 큰 삽을 들어서 비어 있는 집을 건드리자 ‘푸석’ 소리를 내면서 먼지를 일으키며 맥없이 쓰러졌다. 그중에는 우리 친구들 집도 있었다. 준우네 집이 쓰러졌다. 준우는 벌써 오래전에 시내로 이사 갔던 터였다. 준우네 집 벽에는 ‘철거’라고 빨간 페인트로 크게 글자가 쓰여 있었다. 벽이 쓰러지자 준우가 살았던 큰방 작은방의 모습이 나타났다. 준우가 공부하고 잠을 자던 방이었다. 부엌도 무너졌다. 준우네 어머니가 밥 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향숙이와 민숙이네 집도 차례대로 무너졌다.
불도저가 한번 지나가자 길은 진흙탕을 이루며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바퀴 자국을 남겼다. 아이들은 무너진 길옆에서 진흙을 주웠다. 아이들은 부드러운 진흙으로 사람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배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었다. 흙이 무너진 곳에서 땅강아지가 꼼지락 거리면서 나타났다. 땅 속에서 사는 땅강아지는 좀처럼 보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다가 다시 땅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땅강아지는 삽시간에 땅을 파헤치면서 들어가 버렸다.
어른들은 산복도로가 생긴다는 소식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할아버지, 산복도로가 나면 좋죠? 자동차도 다닌데요.”
“그럼 좋지.”
“나중에는 버스도 다닌데요.”
“그래?”
“예.”
“…….”
“왜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싫으세요?”
“아니…….”
할아버지는 산복도로가 생기면 좋다고 하시면서도 좋은 표정이 아니셨다.
언젠가는 웃천막이 철거될 것이라는 것을 아셨을까?
아마도 할아버지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오래지 않아 할아버지의 걱정은 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복도로 공사는 캄캄한 밤중에도 계속되었다. 산복도로 공사를 하는 길에는 길을 따라서 환하게 불이 켜졌고, 흙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고 갔다.
아이들은 학교 앞으로 난 산복도로 길옆에 꽃씨를 뿌리고 화단을 만들었다. 꽃나무 묘목도 심고 주전자에 물을 담아 와서 물을 주었다. 노란 개나리 나무를 심고, 또 어떤 때는 철쭉꽃나무도 심었다. 그리고 꽃나무에는 자기 반 이름표를 붙였고 아침이면 당번은 주전자에 물을 한가득 떠 와서 물을 주었다. 아이들은 샐비어 꽃을 심었고, 꽃이 피면 꽃잎을 거꾸로 해서 꿀을 빨았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꽃을 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 꽃잎을 빨았고, 샐비어 꽃 주위에는 아이들이 버린 꽃잎이 가득했다.
여름철이면 방역을 한다고 소독차가 뿌우웅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산복도로를 달렸다.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어디서 나왔는지 구름같이 모여서 소리를 지르면서 소독차 뒤를 따라 달렸다.
어느 날 이삿짐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줄을 지어서 가는 모습이 보였다. 큰 트럭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트럭에는 하얀색 별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웃음기가 없었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아이들도 타고 있었다. 우리 또래 친구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어데 가는데?”
명호가 물었다.
“몰라, 어데 이사가는가봬.”
“어데로?”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못 했다.
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동네 아래에 있는 고아원에서 밥 짓는 소리가 요란했다.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산복도로에 있는 가로등에 불이 하나 둘 켜졌다.
넓은 산복도로 길에 자전거가 지나가고 있었다.
산복도로는 조용하게 밤을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