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비밀 정원으로
시간만 나면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옆에서 아무리 재촉을 해도 묵묵부답이다. 가만히 기다려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 것일까. 눈치를 보면서 옆에 슬쩍 퍼질러 않아 기다려 보지만, 시간만 갈 뿐 입을 열지 않는다. 해넘이가 눈치를 보면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눈을 한번 끔뻑하자 그새 어디 갔는지 어둑어둑해졌다. 늦게 갈대밭 사이로 기러기들이 한 무리 지어 하늘로 날아간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말 수가 적어지기도 한다. 세상을 다 산 사람들처럼 많은 일을 겪은 사람들. 눈을 쳐다보면 많은 세월이 그 눈에 보인다. 그 앞에서는 함부로 말을 못 한다. 괜히 어쭙잖게 말을 꺼냈다가는 '하꼬'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럴 때는 아무 말하지 않고, 나도 세상을 아는 것처럼 짐짓 연기하는 수밖에 없다. 터벅 걸음으로 걸으면, 발 뒤꿈치를 들고 소리 없이 걷는다. 뒷짐을 지면 따라 뒷짐을 지고, 중년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걸음걸이까지 신경 쓴다.
그래도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겼다.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사람에게 속는 수가 많으니까 말이다. 눈이 침침해서일까. 그건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렇게라도 핑계 대고 싶다. 그동안 만나거나 스쳐 지나간 사람이 몇 명일까. 차창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렇게 본 사람은 몇 명일까. 기억에 남는 사람보다 잊힌 얼굴이 더 많다. 이제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고 알고 싶다. 허투루 지나치고 싶지 않다. 싫어할 이유를 만들고 싶지 않다. 좋다는 말만 해도 다 못할 것 같다. 아이 때는 몰랐던 감정들. 그런 감정이 물러나자 사람이 보였다.
언젠가 사진에서 본 지구는 먼지였다. 더 멀리서 보니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 거기서 나는 생각하며 산다. 조물주가 보면 웃을 일이다. 참, 기가 안 찬다.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모두 같고 평범하다. 도토리 키재기 그 말이 맞다. 어리석은 게 사람 마음이다. 지금 이 마음이라면 넉넉한 사람이 될 것 같다. 생각이 거기에 머물자. 어떻게 사는지 그가 궁금해졌다. 타인으로 보지 말자. 내 생각과 다 맞는 사람은 없다. 다르다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만들지 말자. 참 이상한 게 나이다.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