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랑

by 조금숙 작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 따르릉 거리며 나타나는 자전거 소리가 반갑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누렁이가 부스스 눈을 뜬다. 곤히 잠을 자던 동네 강아지는 상대가 우편배달부임을 확인하고는 이내 경계심을 푼다. 개는 다시 주인집 담벼락에 누워 눈을 감는다.

집배원은 여러 사연이 담긴 편지와 함께 신문까지 대신 배달해 주는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정보 전달 꾼이었다. 요즘은 각종 고지서나 홍보 우편물이 남발하는 시대에 그다지 반가운 대접을 받지는 못하지만 내가 어릴 적 시골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환영해 주던 귀한 사람이었다.

도시에 살다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나는 기차를 타고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방문하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집을 떠나기 전에는 시골에 가고 싶어 안달하다가 이내 엄마와 작별하고 칙칙폭폭 기차가 출발하면 방금 헤어진 어머니가 보고 싶어 눈물을 훌쩍이는 어린 소녀의 마음은 어른이 된 지금도 아리송하다.

나는 여름방학과 겨울 방학 대부분의 시간을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다. 촌에는 신기한 것이 아주 많았는데 특히 신문배달을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하는 것이 색다르고 놀라웠다. 이 분이 마을을 방문할 쯤에는 아이스케키라고 불리는 빙과류를 판매하는 아저씨도 함께 마을에 오곤 하였다. 그는 “아이스케키”라고 동네를 돌며 목청껏 외쳤다. 그 소리에 조용하던 동네에 활기가 돌았다. 무더위로 집안에 있던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돈을 주지 않아도 시원한 연기가 모락모락 나며 감칠맛 나는 팥이 송송 들어 있는 하드를 네모난 큰 통에서 꺼내어 주었다. 아이스케키 한 모금을 입에 물면 여름 더위가 한순간 신기루처럼 싹 달아나 버렸다. 무엇보다 돈을 받지 않고도 하드를 주는 것이 특이했는데 그는 돈 대신 고무신이나 집안에 있는 잡다한 고물들을 받아서 리어카에 실었다. 그 리어카는 텅 빈 채로 왔다가 마을을 나갈 때는 가득 채워지곤 하였다. 일종의 이동식 고물상이었던 것이다. 아이스케키를 판매하는 아저씨가 마을을 떠나고 나면 동네에는 부모에게 혼쭐이 나는 아이가 꼭 한 두 명 있기 마련이었다. 하드 먹고 싶은 마음에 부모 몰래 새 신이나 사용하고 있는 집안의 물건을 가져다 파는 경우였다.

나는 이렇게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신문이란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조부는 흰 은발과 오뚝하게 솟은 콧날이 잘 어울리는 멋쟁이셨다. 할아버지는 늘 단정한 마음으로 신문을 대하였는데 정성스럽게 몇 번이나 정독하셨다. 할아버지가 읽고 난 신문은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그즈음 나는 세계명작 동화에 푹 빠져 있을 때라 읽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시골에는 우리 집과 달리 동화책도 없고 할아버지의 작은 서재에 꽂힌 책은 어린 나의 관심을 끌기에는 무게가 있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누렇게 바랜 종이에 한자가 적혀 있는 책들이 많아 어린 나의 흥미를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신문을 차근차근 한 장씩 펼쳐 보았는데 신문에는 만화도 있고, 다양한 기사도 있었다. 그 시절 신문에는 곰보 얼굴이 미인 형으로 된다는 병원 홍보 광고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신데렐라로 어떻게 변신을 시켜 준다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일종의 성형외과 광고였던 것이다.

이렇게 신문과 첫 인연을 맺은 이후 신문사랑은 시작되었다. 신문은 내 친구이자 세상을 알게 해 주는 인생 선배이기도 하다. 신문에 대한 나의 애정과 달리 이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많은 정보를 흡수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문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클릭만 하면 무료 기사가 넘쳐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낚시 기사나 가십성 기사에 사람들은 종이신문 따위는 필요 없다며 신문을 멀리 하는 것이다.

몇 해 전 조부모님이 계시는 묘소를 방문하였다. 내친김에 아무도 살지 않고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는 할아버지의 시골집을 가보았다. 동네는 여전히 고즈넉하고 기와집들이 시골 풍경과 어울려 한 컷의 멋진 작품처럼 아름다웠다. 할머니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꺼내어 주시던 수박의 달콤 시원한 맛은 그 어떤 성능 좋은 냉장고보다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우물은 이제 활용가치를 다했는지 막혀 있었다. 손님이 오시면 묵고 가던 사랑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그마한 체구에 나직한 목소리를 가지신 할머니는 큰소리를 내는 적이 없었다. 본채 뒤에 있는 장독대와 낡은 부엌을 보는 순간 된장찌개로 저녁 준비를 하는 할머니의 따스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릴 적 마당 한 바퀴를 돌면 금 새 허기가 질만큼 커 보였던 마당은 어른이 된 내게 더 이상 넓은 마당이 아니었다. 집안의 행사 때가 되면 일가친척으로 북적이든 집에서 휑하니 옛날 양반집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팅 빈 집을 묘지에서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처음 텔레비전이 발명되었을 때 라디오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끝이 날 것이라고 했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라디오는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고유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말할 필요도 없이 사회의 흐름을 알 수 있고 현란한 영상매체에서 볼 수 없는 무한한 가치들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신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 읽기는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성공습관 중의 하나이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가장 먼저 현관문을 여는 나에게 입구에 누워 있던 신문이 벌떡 일어나 오늘도 ‘반가워’ 하고 내게 인사를 건넨다. 나의 신문 친구는 오늘도 내면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소중한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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