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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Aug 20. 2020

길가다 마주친 사이비에게 고민을 털어놓다.

마음속 응어리진 답답함을 풀어내는 방법

한 때 잠실역 주변에는 길에서 말을 거는 사이비들이 참 많았다.

 “잠깐 얘기 좀 해요” 라고 하면 바로 지나칠 사람이 많은걸 알고,

 “교보문고 가려면 어떻게하나요?”라는 전략도 (하도 많이 써먹어) 안통하자, 

전혀 색다르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필자는 굉장히 순한 얼굴이라 그런지 유독 길에서 보는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은 대화를 걸어왔다. 

예를 들면 “얼굴이 부잣집 딸 같아요”, “인상이 너무 좋아보여요” , “어?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등등.. 

밖에 나갈때마다 접근해와서 이미 익숙해진 터였다.      


어느날이었다. 

수없이 이어진 소개팅이 잘 안되자 ‘언제까지 시간과 인생을 소개팅에만 쏟아야할까..’ 하는 한탄이 들며 ,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 때 불현듯 잠실역에서 내려 새로 개장한 롯데월드몰을 구경하며 기분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면 기분이 조금 풀어질 줄 알았건만, 오히려 지나다니는 연인들을 보니 더 우울감이 밀려왔다.      


내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를 들은건 그 때였다.  

“우와, 혹시 이 옷 어디서샀어요? 너무 예뻐요! 브랜드 어디꺼인지 물어봐도 되요? ”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뒤에 순하고 착해보이는 동년배 여자분이 웃으며 서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정말 내 옷이 예뻐서 물어본줄 알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잘 생각이 안나네요. 호호. 엄마가 사주신 옷이라서요^^” 그 분은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저는 한복만드는 일을 해요. 패션 디자인과 휴학중인데, 제가 만든 한복 보실래요?” 라며 휴대폰으로 한복사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한복을 잘 볼 줄은 모르나, 그닥 예뻐보이지 않는 그 옷을 난 예쁘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때쯤 인간관계도 덧없는 것이라며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고, 

소개팅도 잘 안되어 울적하던 찰나 (무언가에 홀린 듯) 한 번 얘기해봐도 나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순해보이는 얼굴로 본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길에서 만난 낯선사람이 초면에 말을 걸어온걸 들어준게 처음이라 내가 순수했을수도 있겠다.      

그간 비가 주룩주룩 내린 날씨얘기부터 이런저런 일상얘기를 이어갔다.

“우리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카페가서 얘기 더 해요.” 그녀는 말했고, 나는 “좋아요. 사실 이렇게 만나는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길에서 말거는 사람들 다 사이비 같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안그래도 울적한데 잘 됐다. 저기 카페로 가요!” 라고 말하니, 그녀는 연신 “신기하다. 정말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를 연발했다.      


카페에 가서 주문을 하려고 보니, 커피 한 잔에 6,000원이었다. 

사실 커피를 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생각보다 금액이 커서 내 것만 결제했다. 

그녀는 “저는 아까 커피를 샀었거든요”라면서 마시고 있던 커피를 보여주며 사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췄다.    

  

의자에 앉은 그녀는 내게 몇 살인지 어떤일을 하는지 물어봤다. 

이상함을 느낀건 그 때부터였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하자 계약직인지 정규직인지 물어보는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계통에서 근무하는지, 회사는 어디쪽에 있는지 묻는것에서 찜찜함을 느꼈다. 

문득 사이비에서 고객정보를 캔다는 말이 생각났다. 

당황함을 감추고 이렇게 생각했다. 

‘에라이 잘됐다. 안그래도 오늘 받은 스트레스 여기서 다 풀어버리지 뭐’     


“아! 근데요. 사실 오늘 제가 소개팅을 했거든요. 근데 사진이랑 완전 딴판인 남자가 나온거에요. 

그래도 마음이 멋지면 됐거니 했는데, 글쎄 매너도 없고 완전 성격도 개차반인 사람이 나와서 

진짜 그 소개팅 시켜준사람한테 엄청 빡쳐가지고........” 

약 10분동안 얘기를 들어주던 그녀는 내 말을 끊었다. 

“그러게요. 소개팅했는데 그런사람 나오면 진짜 기분나쁘죠.. 

참, 우리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혹시 휴대폰번호가 어떻게되요? 진짜 신기하다 히히” 라며 번호를 물었다. 

일단 중간에 말이 끊긴 나는 계속 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이따가 제가 알려드릴게요. 아무튼 제가 그 남자 만났다고 했잖아요. 

와 근데 그 사람이 저한테 초면에 어떤 질문을 했는지 아세요? 

제가 살고있는 지역을 말했더니, 집이 어디쪽에 위치하는지 캐묻고, 

저희 집안에 대해 자꾸 묻는데 진짜 기분이 나빠가지고 그냥........

그리고 참 지난번 소개팅도 어땠는지 아세요? 와 정말 이건 더하면 더해요. 그 남자는 ................” 

그렇게 20분정도를 더 들어주던 그녀가 다시 내게 말했다. 

“와~ 진짜 화났겠다. 진짜 무슨 그런사람이 다 있냐.. 아무튼 참, 진짜 별별사람이 다 있다. 

아 맞다! 아까 핸드폰번호 부르기가 좀 그러면 여기 찍어줘도 되요 히히” 

하면서 휴대폰을 내게 내미는 것이었다. 

직접 본인 휴대폰을 나에게 주는데, 이미 내 마음속 응어리진 이야기는 끝났고,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잠시 고민했다. 

“아! 사실 제가 휴대폰번호를 일주일전에 바꿔서 지금생각이 안나요. 잘 까먹어서 어릴적 별명이 금붕어에요. 번호를 먼저 주면, 제 핸드폰으로 연락드릴테니 불러주세요” 

그녀는 010-****-**** 라고 말했고, 나는 적는둥 마는둥 시늉을 했다. 

더 이상 상황을 이어가는게 나 또한 부담스러워 가면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가는길에 그녀는 계속해서 언제 전화를 걸어주냐고 보챘다. 

나는 다른쪽으로 화제를 돌려야했다. 

나 : “네네. 곧 드릴게요. 참, 혹시 남자친구 없다고 하셨는데, 언제 마지막으로 사귀어봤어요?” 

사이비 : “아! 저 엄청 오래됐어요. 나도 얼른 만나고싶다. 우리 이렇게 오늘 얘기도 하고 정말 신기한거같아요. 참, 전화주시면 저도 번호 저장할게요. 헤헷” 

나 : “아 네네 그건 곧 연락드릴거에요. 어머! 생각보다 시간이 늦었네요. 지금 벌써 11시반이에요. 

(빠른걸음으로 가며 시시콜콜한 잡담을 혼자 다 털어놓으며 역까지 도착)

 혹시 어디방향으로 가세요? 시간도 늦었는데 지하철 끊기겠다.”

나는 반드시 그녀와 반대쪽 방향으로 가야했다.

그녀 : “저는 신림쪽으로 가요. 어디쪽으로 가세요? 그리고 전화번호...”

나 : “아, 아쉽다. 저는 반대방향인데 중간에 갈아타야해서요. 버스타고 중간에 지하철 타는게 좀 더 빠를거같아요. 연락은 곧 드릴게요. 곧 금방 드릴테니까 얼른 집에 가시구요. 너무 늦었어요. 조심히가세요” 

손을 흔들며 후닥닥 집으로 도망갔다. 따라올까봐 뒤를 몇 번이나 쳐다봤는지 모른다. 


다만, 어디가서 말할곳도 없어 끙끙댔던 몇날 몇일의 응어리들이 다 녹아내린 느낌이었다. 

집에 와서 여동생에게 “오늘 진짜 이상한일이 있었어. 어떤 여자가 나한테 갑자기 말을 걸었는데..” 라는 말을 하자마자 언니.. 설마 그 한복...? ” 

우린 서로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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