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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Aug 30. 2020

코로나가 박살낸 우리의 일상

당연했던게 당연한것이 아니고, 평범한 날들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음을

처음에는 신종플루, 메르스 같은게 또 발발했나보다 했다.  

‘감기같은 것이 또 생겨났구나’하며 백신이 언제쯤 나올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지 6개월이 지나간다. 처음에는 솔직히 상황을 즐겼다. 

마스크를 쓰라고 하니 아직 겨울(2월)인데 추우니 잘됐다 싶어 열심히 끼고 다녔다. 

당시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중국 다음의 코로나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1월 말 해외로 다녀온 내가 거의 마지막 여행객이 되어버렸다. 

이젠 받아주지도 않고, 나갔다 들어와도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하니 직장인에게 해외여행길은 막혔다고 봐야한다.  이렇게 시작된 코로나가 우리의 당연한 일상을 망가뜨려놓고 있다.

 

모임

코로나 확산이 심해지자 어린이집 교사인 친구는 혹여나 외부에서 코로나를 아이들에게 옮길까봐 걱정된다고 했고, 집에 지병이 있는 가족을 둔 친구는 아예 바깥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지인은 외부모임 자체를 안나간지 6개월이 넘은 상태라고 했다.

회사에서 퇴사하는분이 있어 현직,퇴사자들과 다같이 모이자고 한달 전부터 약속을 잡게되었다. 

하필 그 날짜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논의되고 있을 무렵이다. 

상황이 심각하여 회사에서도 가급적 외부모임을 자제해달라는 권고가 내려왔다. 

그러나 겨우 어렵게 잡은 약속을 취소할 수 없어, 6명만 모이는 룸을 잡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결코 편히 있지 못했다.  내겐 가시방석이었고, 너무 걱정되고 긴장되어 결국 모임 중간에 나와버리고 말았다.     

서스럼 없이 만나오던 친구,지인들과도 이렇게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일이 될거라는걸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이렇게 부담되고,어려운 일이었다니..' 난 묘한 감정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여행

고등학교 친구들과 졸업 후 처음으로 국내여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몇 달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숙소를 예약해놓았다. 그게 오늘이다. 난 집에있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쏟아져나오는 코로나 확진자들로 인해 결국 일주일 전 여행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여행과 무관하게 넷이 만나서 놀기로 했던 날도 취소됐다. 

모두가 만나는 것 자체가 무섭다고 한다. 


오프라인 교육

오프라인 교육을 받으러 가는 상황에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교육 신청해주신 교육생님 맞으신가요? 이번에 코로나로 교육이 갑작스럽게 취소되었습니다. 다른 교육생들 다수가 코로나 확산으로 급작스럽게 취소하여 진행이 불가할뿐더러 한동안 교육 신청을 받지 못할듯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전화를 시작으로 내가 신청한 과정들은 줄줄이 폐강되었다. 

정부의 지침, 코로나로 인한 인원미달 등으로 이번년도는 오프라인 교육을 수강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러나 집에서 강의를 수강하며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강의를 틀어놓은 상태로 딴생각을 하고 인터넷 서칭을 하고 , 

특히 한번 이해가 안되면 그 다음부터 진도를 따라가기가 어려워 완강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실습을 해야하는 교육, 도구가 필요한 취미, 선생님의 코칭과 교정이 세밀하게 필요한 분야(ex.제빵, 필라테스, 미술 등)에서 온라인 교육은 결코 쉽지않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비대면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대면으로 해야 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느꼈다.


취미활동(요가)

몇 년동안 다녔던 요가원도 한달 반동안 문을 닫았다가 겨우 열었는데, 실내체육시설 집합금지 명령에 따라 또다시 휴관에 들어간다고 한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만큼 약한 체력을 가졌기에 요가는 나에게 필수이자 생존의 운동이다.

한 때 비장한 마음으로 홈트레이닝을 시작했으나, 힘들면 동작을 안따라하게 되고 쉬다가 흐지부지 끝내는 나를 보고 반드시 오프라인 요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독학으로 안되면 나와서라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다가 오래 다닌 요가원이 문을 닫는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코로나가 발발한 이후, 사실 요가원 다니는 것 자체가 양심에 찔렸다. 마스크를 쓰고 수련을 하지만 혹여나 확진자가 나올 경우 이 상황에서 요가원에 갔다는건 칭찬받을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몸이 무거워지고 찌뿌둥한 무기력감이 몰려올때쯤 눈치보며 간간이 갔던 요가원이 또다시 휴관이라니..절망적이다.     

 

장례식장

먼 친척분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조문객이 우리밖에 없었다. 조문을 몇 번 가본 지인이 어딜가나 텅텅 비어있는곳이 장례식장이라고 한다. 지금 시기에 조문이 거의 금지되고 있으니, 떠나시는 분도 남아있는 분도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을듯하다.     


결혼식장

아는 커플은 결혼을 내년으로 미뤘다고 한다. 아니면 가족,친지만 모아놓고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바로 함께사는 경우도 봤다. 결혼식장에 50명만 모일 수 있기 때문에 나의 지인은 50명이란 숫자를 두고 누구를 초대해야할지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초대할 지인이 많은 경우, 결혼식 장소의 각 방에 50명씩 모아놓고 TV를 틀어 결혼식을 생중계 하기도 한다. 


카페

평소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면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게 참 재미있었다. 

집중도 잘되고, ‘다른 사람들은 뭐하나’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을 통해 집단 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밥을 먹고 2차로 항상 갔던 카페를 갈 수 없게되니, 지인모임부터 데이트까지 밥먹고 갈 수 있는곳이 사라지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 멍하니 길가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어딜가나 마스크와 함께

샤랄라한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단장하고 나온 2020년 꽃피는 봄날부터 우린 마스크와 함께해야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란 말은 한동안 확인이 어려울듯하다. 

얼굴의 2/3를 마스크로 가린채 눈만 보고 상대방을 맞이해야하고, 눈으로 서로의 표정을 읽으며 살아가고 있다. 무더운 여름도 우린 마스크와 함께하는 현재진행ing 상황이다.

얼굴에 무언가 덮혀져 있는게 이렇게 답답한 일이었나 생각이 들며, 호흡곤란까지 오는 느낌이다.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가끔 열이나서 내가 코로나에 걸린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그럼에도 열이나서 흘리는 땀을 닦을지언정,  나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주변의 시선을 고려해 마스크를 쉽게 벗을수가 없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밥을 먹으러 갈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실내가 아닌 실외 식당을 먼저 찾게 되었다.   

어딜가나 체온체크를 필수적으로 해야하고, 뷔페,식당,종교시설,요가원 등 가는 모든곳에 QR코드를 찍고 다니거나 이름,휴대폰번호를 남겨놓고 다닌다. 우리가 가는 모든곳에 개인정보를 남겨놓고 다닐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회사원으로써 두려운 것은 내가 다녀간 곳에 확진자가 발생하여 검사를 받게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 돌아다녔다는것부터 비판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늘 마음졸이며 동선을 최소화해야한다.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확진이 된다면 회사의 전 임직원이 검사를 받게되고, 회사문을 닫을 수 있는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하니 상상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코로나의 후유증은 또 어떤가. 탈모, 폐손상 등 결코 겪고 싶지 않은 것들 뿐이다.     


우리의 삶에 코로나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년도 뿐만 아니라 다음년도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말은 모든이들에게 절망감과 피로감을 준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도 들린다. 우리가 삶에서 누렸던 당연한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평범한 날들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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