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

by 드림트리

내겐 두 분의 할머니가 계신다.


나를 보면 힘껏 안아주고, 온 얼굴 가득 뽀뽀해주고, 너무 예뻐서 어떻게 시집보내냐고 하며 (내가 안 예쁘다는건 사춘기 때 깨달았다..) 하루종일 사랑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친할머니..

그리고 애정표현은 전혀 없지만 명절 때 내려가거나 우리집에 가끔 오실때면 밑반찬 해놓고 집안일 도와주며 묵묵히 뒷바라지를 하는 외할머니..


내게 직접적으로 애정을 주시는 친할머니가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어린시절부터 많이 좋아했다. 20대에 들어설즈음 힘들게 농사지은 것들을 조용히 뒤에서 챙겨주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두 분 모두 나를 손녀로써 정말 사랑해주시는걸 알게 되었다.

사랑이라는걸 직접적인 표현을 받고 알게 될 수도 있고,

말없이 뒷바라지해주는 모습에서 울컥하고 느낄 때도 있다.

이런 진심을 비로소 깨달았던 20대 중반,

두 분은 노인이기에 나와 함께 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두 가지 생각이 문득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만약 할머니에게 한가득 정을 드리고 추억을 드렸는데, 곧 세상을 떠나시면 내 마음이 어떨까..

내가 과연 그 슬픔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예 정 없이 살아가며, 떠나셔도 슬픔에 흔들리지 않도록 내 인생을 살아가는게 맞는것일까.

그럼에도 이제까지 받은 사랑을 깨닫게 된 이상 할머니 두 분을 저버릴수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 두 할머니께 추억을 드리며, 후회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상대적으로 집이 가까운 친할머니 집에는 정말 자주 찾아갔다.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사는 다른 친척손자가 한 번을 안가도 나는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팔도 주물러드리고, 맛있는것도 사드리고, 때론 웃겨드리고, 그냥 옆에 있어 드렸다.

이렇게 해야 내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시골에 살고 계신 외할머니께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1년에 기껏해야 2-3번 찾아뵙는게 전부다.

매번 돌아오는 주말.. 못 찾아 뵙는다는 말은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다.

갈 때마다 5만원이든 10만원이든 용돈을 드렸다.

할머니를 보고 방긋 웃어드리니, 그렇게 무뚝뚝한 외할머니도 나를 보며 싱긋 웃어주신다.

다른 손자, 손녀들인 나의 친척들 심지어 나의 형제자매들도 이런 나와는 생각이 조금 다른것같다.

할머니집은 명절 때 한 번쯤 들르는 곳, 할머니는 좋지만 바쁘고 귀찮으면 막상 안가게 되는 곳, 나 대신 부모님이 직접 들러서 안부드리면 되는 곳쯤으로 생각하는듯하다.

나의 가족인 남매들에게 적어도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네 생각을 자꾸 강요하지 마. 너가 그만큼 더 잘하면 되는거야.”


나의 친할머니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발길조차 없는 다른 손자 손녀들을 정말 그리워 하셨다.

어린시절 부모님을 따라 명절 때 종종 찾아오다가 나이가 들수록 발길이 뜸해지는 곳,

할머니집은 과연 그런곳일까.


“이런 손녀 또 없다, 정말 고맙다.”

나를 보며 두 분의 할머니는 말씀하셨고, 말씀하신다.


조건없이 받는 사랑,
이보다 위대하고 가치있는게 있을까


돌아가신 친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은 여전히 내 마음에 한가득 남아있다.

어떤 날은 보고 싶은 마음에 울컥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어떤 날은 나를 위로해주고 따뜻하게 어루어 만져주는 느낌.

그리고 어느날은 할머니와의 재밌는 추억이 떠오르며 즐거워지는 그런 날.

떠나셨어도 함께 만든 추억, 풍족히 받은 사랑만큼은 여전히 내안에 남아있다.

함께 할 수 있는날이 길지 않기에
계실때 잘해드리고 챙겨드려야한다


몇 년 전 회사동료의 조모상 장례식에 가게 되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겪은 장례식이라고 설명한다.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시겠어요.. 저도 할머니가 있는데.. ” 라고 위로하자

“사실요..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을 잘 몰라요. 어린시절 명절 때 몇 번 찾아뵙긴 했는데, 솔직히 잘 안 갔어요. 특별한 추억도 없어서 애정도 없는 것 같아요. 몇 달 전부터 돌아가신 할머니는 병원에 계셨는데요. 부모님이 다 케어해주셨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슬프다기 보다는 잘 안와닿는 것 같아요”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분명 동료의 할머니도 손녀로써 말없이 그 분을 정말 아꼈을 것이다.

대놓고 표현하지 않은 사랑과 애정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뿐.


내겐 한 분의 할머니가 남아계신다.

나를 아껴주고 챙겨주시는 .. 점점 몸이 많이 아파온다고 말씀하시는..

그저 간절한 바람 한가지가 있다면, 한 분 남은 소중한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이다.

돈, 명예, 권력 이런건 사랑, 건강, 평안 안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물욕일 뿐이다.


두 할머니를 통해 조건없이 한가득 받은 사랑을 느끼며, 받은 사랑을 표현하고 베풀었더니,

여기저기서 내게 또 다른 '사랑'들이 다가온다. 풍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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