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학벌로 가스라이팅 당한 대기업 직장인 회고록
‘1-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수능생 시절 굉장히 영감이 되고 자극이 되는 명언이었지만 직장생활 8년차에 다다르며 이제 이 문구가 참 다르게 보인다.
하위권이던 친구는 치킨 한 마리정도쯤은 남에게 쉽게 사줄 만큼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상위권이던 친구는 돈이 필요해 부업을 알아보던 중, (라이더로 등록하여) 회사 퇴근길에 치킨 한 마리 배달하고 집에 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치킨으로 인생을 논하기엔 참 모순이고 잘못되었지만 그만큼의 자극은 충분히 받았으니 어쩌면 성공한 명언일 수도 있겠다.
8-90년대생이라면 특히 공감할 것이다. 사람의 존엄성과 인격은 학교 성적과 등수로 판가름 되었으며, 등수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한순간 바뀌었다. 학교에서는 물론이오 사회가 그랬다. 다른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데 왜 못하냐는 말이 들려오고, 잠 안자고 허벅지 찔러가며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10년 전 한 스타강사는 이런말을 했다.
“나는 성공하는 것이 당연해. 그 시절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사람 대한민국에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하루에 4시간도 못자면서 독하게 공부했어.”
요지는 ‘그만큼 공부를 독하게 열심히 했다’는 것인데 나는 잠을 안자고 허벅지만 찔러가며 공부하면 되는거라고 오해석을 했다. 난 매우 약한 체력을 갖고 태어났고, 내게 맞는 공부 방법을 못 찾고 있었고, 공부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았기에 뒤늦게 공부를 할래야 따라잡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10년만에 유튜브를 통해 그 스타강사의 강의 일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얘들아 공부하는건 당연히 중요하지만 너희 스스로 잠도 푹 재워주고, 외모도 조금은 꾸며주고.. ...
너희 스스로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줘야 해.”
덧붙여 이런면에서 과거와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좋은 성적 받고, 좋은 대학 나와 대기업 직원, 공무원, 의사, 판사 등의 코스를 밟아나가는게 최고의 성공이자 효도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비록 좋은 성적도 못받았고, 좋은 대학도 못나왔지만 운좋게 대기업에 입사한 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좋은 대학 나온 주변의 동료들은 과연 내가 닮고 싶을 만큼 대단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여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겠다.
매사 돈 걱정으로 고민 많은 모습만 가득했고, 밤낮없이 인생을 갈아넣어 야근하던 그 시절 ,
절대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교육열풍은 영화관조차 없는 시골 깡촌에도 대단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피아노, 미술 학원은 기본이었으며, 극성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검도, 플롯, 바이올린, 영어과외, 수학과외 등 모든 것을 섭렵하고 다녔다.
20대가 되어 돌아보면 그들의 명문대학 진학은 모두 실패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실패한 삶일까.
절대 아니라고 믿는다. 부모의 곁을 벗어났으니 이젠 본인이 직접 원하는 삶을 개척하면 되는것이라 믿는다.
생각해보면 나의 10대 중-후반은 참 불행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성적으로 등수로 정서 학대를 당한 상처뿐인 시절이었다.
가장 슬픈건 사춘기 이후 10대시절의 추억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된 친구들과 가끔 지나간 과거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본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끝난 날 딱 하루만 놀았잖아. 생각해보면 매일 학교 끝나고 학원가느라 놀아본적 거의 없는게 아쉬워. 10대시절 추억이 많지 않지..”
“당시 손가락질 받던 실업계 고등학교로 가서 기술을 배워볼걸 그랬어. 그걸로 유튜브 찍었으면 승산이 있었을텐데”
“이렇게 될바엔 그냥 중, 고등학교 시절 잠 많이자고 펑펑 놀걸 그랬어.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만 있던 시간이 너무 많았어. 책상 앞을 떠나면 뭔가 죄책감이 느껴졌거든.”
“일요일 저녁만 되면 너무 우울해져. 이렇게 되려고 내가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었나 싶어.”
최근 구조조정이 불어닥친 대기업에 다니는 친척은 주말마다 목공 기술을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회사 사람들에게 미래 계획을 물어보면 기술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한다.
어쩌면 나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자각하지 못한채 10년 전, 20년 전의 성공 기준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일요일 저녁이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데, 월요일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살짝 우울해지는 나날을 매주 반복하고 있다.
그나저나..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사무직 세계에서는 학창시절 성적과 등수가 성공과 행복을 결정할만큼 유의미한 것이 맞는가 하는 강한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