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감이 나를 지배했던 초기 우울증을 겪고 나서..
평일 퇴근 후에 이어 주말까지 요가,미술, 영어공부..등등 아등바등 바쁘게 살던 내가 어느날 모든걸 멈췄다.
코로나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입사 후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온듯한데 결과물은 그리 없는듯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공허함과 함께 그냥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한달동안 회사가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분 1초가 아깝다고 느낄만큼 시간부족에 시달리던 내가 모든걸 놓아버리니 신기하게도 시간이 넘쳐났다.
소파에 앉아 TV로 유튜브를 보거나 멍때리거나 어떤날은 그냥 무작정 도착점없이 길을 걷기도 했다.
학생시절 살았던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보기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친구를 불러 공원 산책을 하기도 하고..
아등바등 돈을 아껴써서 뭐하나 싶어 피부/바디관리에 200만원이라는 돈을 순식간에 결제해버리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기에 야근하지 않는 날은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그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보내길 한달째 지속하다보면 점점 생각이 사라진다.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듯하다.
특히 주말의 24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진다. 자고 싶은만큼 푹 자고 일어나면 오후시간이다.
뭔가 찜찜하지만 이 또한 익숙해져간다. 일어나자마자 무계획 , 무념무상이다.
점점 자신감이 하락하는 느낌이다. 요가를 하며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고 다녔던 내가 땅을 보고 다니게 된다.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만약 회사에 다니지 않은 채로 매일같이 이런 24시간을 맞이한다면 조금 끔찍할듯했다. 항상 퇴사를 생각하며 회사를 다녔는데, 이런식의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한다면 쉽게 우울증에 걸릴것 같았다. 회사를 퇴사하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월급이 나오고 있으니 정말로 얼마나 다행인가..
그럼에도 일요일 저녁은 다음날 출근이라는 생각을 하니 참 싫었다.
중복에 이르며 날씨가 매우 더워졌다.
평일에는 항상 해가 뜨기 전 출근하고 해가 저물 때 퇴근해서 몰랐는데 주말에는 그 햇볕이 아주 강하게 나를 향해 내리쬔다. 혼자 집에서 에어컨 트는것도 아깝다고 느껴져 카페로 직행한다.
밥을 먹고 난 이후라서 그런지 노곤함이 밀려온다.
이 날 따라 사람들이 시끌벅적해서 공부할거리를 가져와도 잘 안되는 그런 날이다.
오자마자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향하는 내가 너무 미웠다.
이런저런곳에 돈이 줄줄 새는데 그날따라 주문한 커피값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라도 가면 좋으련만.. 생각해보니 이번년도는 여행을 한 번도 가본적이 없다.
기분전환될만한 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기분이 참 안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휴대폰만 틀면 나오는 사건,사고 뉴스기사들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불안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점점 타락해가는 나를 보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다.
사람이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 노동을 하며 돈을 버는것도 참 중요한 일이라고 느꼈다.
회사는 돈만 벌기 위해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오직 돈만을 위해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에어컨 빵빵한 업무공간에서 일을 하는 행위가 ,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씻고 옷을 찾는 행위가,
동료들과 수다떨고 함께 점심을 먹는 행위가 꼭 시간을 의미없게 보내는것만은 아니었구나 하는걸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내 회사만이 내가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걸 막아줬던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난 약한듯 하지만 강한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외로움이 많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강하고도 약한 사람이라는걸 깨달았다.
요즘들어 2030세대의 우울증이 날로 심해진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갈 곳이 있다는것, 안정적인 돈이 매달 들어온다는것, 누군가에게 업무 얘기를 한다는것 때론 나의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바쁘게 살아가며 시간에게 공허함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 자기 전 이런 삶에 감사함을 느끼는 여유가 있다는것
하나씩 의미를 부여해보면 감사함을 느낄 일은 참 많다.
오랜기간 쉬었다가 모처럼 화실에 갔다. 그럼에도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칭찬을 들었다.
다시 힘을 내서 계획을 세우고 글도 쓰며 바쁜 내 일상을 되찾아야겠다.
난 바쁘게 살 때 자신감을 얻고 가장 나다움을 느끼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