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혼에 아이가 있는 선배집에 집들이를 갔다.
지하철역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여 봤더니 1억원 이상의 외제차를 새롭게 뽑았나보다.
아직 새 차 티가 난다.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어쩌면 예의가 아닐수도 있을듯하여 꾹 참았다. '맞벌이를 한다해도 1년 버는돈을 차에 다 투자해야할텐데.. 할부로 몇년치하면 가능하겠지? 아니면 부모님이 사주셨나..?'
젊은 사람들이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길을 다니다보면 또 어떤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젠 명품백을 생활화한다.
자본주의를 알아가게 되며 이제 난 '어떻게 구매할 수 있었는지' 돈의 출처에 더 관심을 두게 되는것 같다.
오랜기간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내가 버는 월급의 한계를 크게 느껴왔기 때문일까.
몇개월 할부인지, (설마..) 리스인지, 부모님이 사주신건지 궁금함이 가장 먼저 밀려온다.
긴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식장도 참 많이 다니고 있다.
그때 가장 눈에 띄는건 누구나 하나씩 메고오는 샤넬백이다.
평소 회사에는 잘 들고 오지 않던 사람도 딱 그날만은 명품백을 들고온다. 어린 시절은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젠 알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누군가의 결혼식장에 명품을 들고 온다는건 그만큼 신경써서 왔다는 뜻이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일테니.. 결혼식하는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는 의미라고 본다면 나는 매번 미안함을 느낀다.
내겐 명품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내 월급으로 200만원 이상의 가방을 산다는건 그만큼 내가 포기해야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이다. 오랜기간 직장에서 일하면 경제적 자유를 이룰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부족함을 느낀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한 푼 두 푼 푼돈을 모았다면 막상 그 돈을 가방 하나에 덜컥 지불할 수 있을까 싶다.
아직까지 간절히 사고싶었던 명품백은 없었기에 더 그럴수도 있다. 그럼에도 특별한 날 들어야 할 명품백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충분히 공감한다.
한 친구는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게 너무 기분이 좋다고 한다. 자신감도 생기고 , 열심히 일해서 산 가방을 볼때면 뿌듯하고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다른 친구는 가방 하나를 사도 좋은걸 사서 잘 들고 다니는게 더 낫다고 한다.
할부로 긁은 명품가방들이지만 오랜기간 관리도 열심히 하며 잘 들고 다닌다.
다른 누군가는 돈이 많기 때문에 명품백을 일반 가방 사듯이 산다.
이런걸 보는 누군가는 말한다.
"살 수 있는 형편에서 사는건 상관없는데, 빚을 끌어와서 사거나 남들 보여주기식으로 명품백을 생활화하는건 사치지. 이건 아니지."
내겐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기회들이 더 눈에 아른거려오는건 어쩔 수 없는것 같다.
예를들면 여행, 취미 배우기, 맛집 탐방 등..
삶의 상황과 기준은 각자 다르다.
차도 마찬가지이다.
아파트, 빌라, 달동네 어디든 외제차는 있다.
"차는 비싸더라도 좋은걸 사야해. 만약 사고가 났을 때 비싼 차는 튼튼하거든.
10년 이상 탈 생각으로 차를 샀어. 세금부터 기름값까지 다른 차종보다 월등히 비싼건 감당해야겠지.."
이 말을 들은 다른친구는 나중에 뒷말을 한다.
"국산차도 충분히 튼튼한거 많은데.. 얘네 월급에서 아무리그래도 저 차는 너무 무리한거 아닌가.. 각자 생각이 다르니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아무튼 나라면 진짜 숨막히겠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외제차는 있다.
예전에는 먼저 안좋게 생각하고 봤지만 각자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젊은분들이 꽤 많네.. 어쩌면 집을 샀는데 집값도 올랐을테고 거주하는 공간이 안정되었다고 생각하니 차도 좋은걸로 샀겠지...?'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나로써는 그들을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지금의 난 잘 굴러가는 국산 차에 만족하고 있는 단계이다.
오랜기간 뚜벅이 생활을 청산하고 차를 타니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했던 일상이었겠지만, 내겐 하루하루 행복감과 감사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맞추어 만족스럽고 뿌듯하게 하루를 살아가는것.
나는 보여지는 삶보다 내면의 만족과 행복을 주는 즐거운 경험에 더 가치를 두고 돈을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