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곽진언-자랑
인생에서 가장 벌렁이던 순간을 뽑으라면 결혼식이다. 영원을 함께 할 사랑하는 오빠 손을 잡고 소중한 내 사람들에 둘러싸여 축복과 축하를 받았던 그 찰나는 잊을 수 없다. 밤에 이뤄질 단짝들과의 샴페인 파티와 다음날 떠날 라스베이거스와 하와이도 한 몫했다.
간질간질 마음을 간지럽히던 결혼식 끝무렵, 한 손으로 욱신대는 심장을 쓸어내린 일화가 있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두 볼에 연지곤지 찍은 채 날아오는 밤 대추 친구들을 치마폭을 받아낼 즈음이었다.
“경미야!”
익숙한 목소리에 입꼬리 힘껏 당겨 올리며 뒤를 돌아봤다. 검은색 모자를 눌러쓰고 까만 롱 파카를 입은 남자는 멋지게 운동화까지 꺾어 신었다. 내게 구깃구깃 구겨진 흰 봉투를 내밀며 축하한다고 행복하라고 수줍은 인사를 건넨다. 지금은 텔레비전 틀면 드라마 예능 영화 막론하고 막 나오는 막 배우 조재윤이다.
봉투 안에는 세종대왕 세 분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오빠. 축의금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이렇게 많이 넣었어요. 라면만 먹으면서...” 결혼식날 엄마 아빠 얼굴 보고도 안 울었던 불효녀가 오빠 때문에 눈물 뺄뻔했다.
당시 재윤오빠는 오랜 무명배우 생활을 하며 간간히 연극무대에 오르거나 영화 단역을 도맡았다. 오빠와의 첫 만남은 압구정 로데오에 위치한 술집이었다. 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선방’ 모임엔 나처럼 기자도 있고 오빠처럼 배우도 있고 정재계, 전문직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오빠랑은 단 번에 친해졌다. 쿵작이 이렇게 잘 맞을 일이야? 인간관계에서 개그 코드는 참 중요하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만나 소주를 마셨다. 연극에 대한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했고 꿈을 나눴다. 오빤 진짜 사나이다. 유머스럽고 스위트하고 의리 있고 겸손하다. 낮에는 수다스럽고 밤에는 귀를 열어주는 남자다. 세상 사람들이 조재윤이라는 배우를 알아봐 주길 늘 바라왔다.
기도는 통했고 오늘 오빤 도시어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고, 도시경찰에서 범인을 잡고 있고, 드라마에선 유령을 잡고 있다. 아름다운 와이프와 귀여운 아들과 살붙이고 살고 있다. 바쁜 오빠 얼굴 보기는 힘들고 그나마 자주 카톡으로 근황을 묻고 있다. 항상 오빠는 멋진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경미야~오빤 아직도 부족해. 더 많이 노력할 거야. 더 많이 공부할 거야.”
오빠. 그거 알아요?
오빠가 손에 쥐어준 축의금이 그날 가장 비쌌어요.
다음에 오빠가 좋아하는 양꼬치에 칭다오 사주세요.
bgm. 곽진언-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