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켈란 Jul 23. 2023

뭉근한 시간

꾸준히 뛰고 쓰며 마시는 루틴



툭 툭 툭. 툭투욱툭툭.


밤새 비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니 빗줄기가 종일 창문을 두드리겠다.


일요일 아침 9시 40분.

운동 갈 시간이다. 평일 주말 없이 PT가 있건 말건  오전에 헬스장을 가는 일은 내 루틴 중 하나이다.


뭉근한 시간이지만 뭉그러지고 싶었다.

가벼운 빗소리가 좋았고, 날씨 때문인지 몸은 덜 깨 무거웠다. 매미처럼 침대에 바짝 붙어 누워 10시로 아이폰 알람을 맞췄다.


20분만 더…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를 반복재생으로 들으며 천장을 보고 누웠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쉬어도 되잖아?’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잖아’


아이폰을 열고 초록창에 ’비오는 날 운동‘을 검색해 봤다. 실내운동과 홈트를 추천한다는 지식인과 블로거들이 쓴 게시글에 웃음이 샜다.


비 오는 날 운동은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나 뭐래나. 아무튼 운동을 추천하는 글들이 빼곡했다.


‘비 오는 날은 습도가 높으니 운동은 쉬길 바랍니다’ 내심 바랬던 답변은 한 문장도 없었다.


가? 말어?


하고 있는데. 20분이 꽤 길구나 싶었다. 아이폰 화면을 툭 쳐보니 9시 59분.


“아이코“ 탄식을 절로 뱉었다. 기다렸던. 아니 울리지 말길 바랐던. 알람이 빗소리보다 크게 울었다.


간다. 가.

(대신 평소보다 운동시간과 강도를 줄이기로 했다.)


읏차. 일어나 침대를 정리했다. 모자를 쓰고 우비를 입었다. 신발장에서 당장 버려도 될 운동화를 골라 신고 전기자전거 타고 헬스장으로 출발!


대치역에서 양재역까지.

전기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있는 센터는 맑은 날에는 가깝고 비 오는 날에는 꽤 멀다. 그래도 달린다.


사실 달리는 도중에도 다시 돌아서 말아?를 살짝 고민했다. 수없이 주저하며 갈등하는 감정. 인간미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우비를 툴툴 털고 입장.

일요일에만 가끔 나오는 데스크 스텝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몸이 엄청 좋아지셨어요!”


“아… 고마워요.”


지난 이 주일간 내 몸에 많은 변화가 있었나? 글을 쓰면서 더 열심히 계단을 걷고 무게를 쳤다. 체력이 뭉근한 내 시간을 지켜줘서다.


그러고 보니 오길 잘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 다르다. 나는 참 단순한 인생을 걷고 있다.


뛰고 쓰고 마시고 꿈나라. 매일매일 단순한 루틴을 지키며 산다. 뭉근한 시간이지만 지루한 적 없고 억지로 하지 않는다.


매일 운동하며 전 날 마신 술을 빼고 근육을 키운다. 실제로 PT를 받은 동안 꾸준히 근력은 올라갔고 반대로 체지방 수치는 낮아졌다.


매일 술 마시면서 가능한 일이다. 다만 안주는 단백질 위주로. 어제는 장어와 관자구이랑 와인 한 병 비웠다.


지금처럼 글쓰기도 꾸준히다.

지난달 3주 동안 230페이지 분량 에세이 ’ 딩크‘를 완성했다. 글에 탄력이 붙으니 금방 써졌다.


현재 교정 교열된 최종원고를 출판사 편집자에게 넘겼고 표지 디자인도 거의 마무리 단계이다. 정말 8월이면 서점 가판대에 책이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딩크’를 끝내고 바로 단편소설을 썼다.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실화 바탕 픽션이라 조심스러웠고 또 아플까 봐.


소설도 에피소드 두 편만 남았다. 순수하게 좋아했던 기억으로 설레었고, 탄로 난 실체를 글로 담을 때는 무너졌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아무래도 남은 두 편은 좀 미뤄야 할 것 같다.


매일 마신다.

와인과 위스키를 주로 즐긴다. 바롤로와 맥켈란.

장마를 앞두고 막걸리와 전통주를 엄청 주문했는데 벌써 질려버렸다.


뛰고 쓰는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다만 술값이 제법 든다. 그래도 뭐. 행복하면 됐지. 가득 차 있던 셀러에 빈 공간이 많이 보인다. 다음 주 날 좋은 날 단골 와인 샵에 가야겠다.


온전히 뭉근한 내 시간이 좋을 여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위험한 학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