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이상은-삶은 여행
인생술집, 인생맛집.
요즘 말로 최애(최고로 애정 하는)로 꼽는 것 앞에 ‘인생’이란 단어를 붙인다. 삶은 여행이라고 생각해서 여유가 있을 때 열심히 쏘다니는 내게도 인생여행이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대학교 2학년 꼬꼬마 시절, 한 달 동안 떠난 캐나다 횡단 배낭여행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선 21세다.
1년 동안 캐나다 앨버타 에드먼턴에서 어학연수를 했었다. 첫사랑을 만났고 중국, 태국, 대만 부자들과 매일 밤 파티를 즐겼다. 당시 중국 상하이에서 자동차 회사 5개를 가지고 있던 재벌님 외동아들이 내 그림자를 쫓아다녔다. 이미 난 사랑에 빠져있었고 그 녀석을 사랑하기엔 너무 100킬로. 두 볼이 발그스레한 귀여운 꿀꿀이였다. 첫사랑만 아니었다면 아마 난 중국 공주가 되었을지도. 잘 지내니? 류시앙.
날 너무나도 아껴주던 친구도 잊을 수 없다. 중국 베이징 시장 딸로 나보다 다섯 살 연상 유부녀 언니다. 두 살 동생 태국 수상 딸과 함께 셋이 매일매일 밤하늘 별을 헤며 놀았다. 시간은 역시 야속했다. 정처 없이 놀다가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이별이다. 출국하기 전 한 달 동안 떠날 캐나다 횡단 여행 가기 전 마지막 날 밤이었다. 중국 언니가 호텔 스위트룸을 잡아놨다며 단 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했다.
어차피 빅토리아까지 첫사랑과 동반 여행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답고도 슬픈 밤이었다. “I love you” 언니의 정말 뜬금없는 커밍아웃 동시에 고백. 어지러울 수도 있겠지만 조금씩 차오르는 두 눈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귀를 활짝 열고 담담하게 털어놓는 언니의 목소리에 기울였다.
동성연애자였지만 세상 눈이 두려워 숨기고 살았단다. 집안끼리 약속으로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의사인 남편 따라 에드먼턴으로 이민을 왔다고. 날 처음 보는 순간 자신의 동생과 너무 닮아 호감을 느꼈고 시간이 갈수록 감정이 자라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그래서 슬픈 이야기. 용기 내 고백 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었던 밤이었다. 출국하고도 3년 동안 편지와 선물을 보내왔다. 영화 같은 인연이었다.
암튼 다음날 아침, 난 캐나다 횡단 여행을 위해 내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신발끈을 힘주어 묶고 첫사랑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첫사랑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많은 추억이 있기에 따로 다뤄볼까 한다.) 사실 여행 전에 모두가 크레이지 걸이라며 말렸지만 이미 내 마음은 비 오는 날 널어놓은 빨래였다. 절대 못 말린다.
에드먼턴을 시작으로 밴쿠버 빅토리아(첫사랑은 여기까지만 함께했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버스에서 5장의 편지를 읽으며 얼마나 울었던지...) 오타와 캘거리 해밀턴 토론토 퀘벡을 지나 몬트리올에 깃발을 꽂았던 캐나다 횡단 여행은 내 인생 중 가장 많이 웃고 또 울었던 시간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은 야간 버스나 유스호스텔에서 잠을 자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 여행지에서 만난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과도 마음을 포갰다. 이박 삼일 떠들어도 모자랄 보따리들이 많지만 딱 두 개만 풀어보려 한다.
“Your eyes are pretty”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로 향하던 버스 안,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훅 치고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고요한 초록빛 눈동자를 가진 또래 남자아이가 날 보고 웃고 있었다. 고맙다는 답을 돌려주자, 그때부터 신이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긴 어머니를 찾아가는 중이라는 친구는 오타와에서 내게 식사대접을 하고 싶단다.
거절할 이유 없어 나란히 버스에서 내려 오타와 시내로 가서 파스타를 먹었다. 달콤한 훈내는 여기까지. 레스토랑 서버가 빈 접시를 가지고 간 후 일어서려 할 때쯤 친구는 초록빛 눈동자를 반짝였다. 함께 어머니를 찾으러 가자고. 금방 찾는다고. 뭐에 홀렸는지 그 뒤를 쫓아갔다.
쭉 길을 걷다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니 내 얼굴엔 일그러진 스크림 가면이 써진다. 오. 마이 갓뜨! 땅바닥엔 약쟁이들이 뒹굴었고 여기저기 주사기들이 흐트러져있었다. 동공 풀린 좀비들이 날 바라봐며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쏟아냈다. 초록빛 친구는 조금만 더 들어가면 엄마가 있을 거라며 내 손을 덥석 잡고 이끌었다. 머리는 새하얀 도화지가 됐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 손을 뿌리치고 냅다 뛰었다. 정말 안간힘을 써서 하니처럼 달렸다. 너무나도 무서웠던 걸까. 한램가 골목에서 벗어났는데도 버스 터미널까지 내 두 다리는 전력을 다해 굴려졌다. 터미널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다시 한적한 오타와 시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인생 한 순간이다 싶었고 그 와중에 기가 막힌 경험 했다며 스스로 감탄했다는 변태 같은 이야기.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토론토에 있을 때였다. 금융도시만큼 기다랗고 검은 빌딩 숲 속 근사한 정장을 입은 백인들 사이를 터벅터벅 걸었다. 빌딩 유리문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고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몸만 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까맣게 탄, 멸치처럼 마른 동양인 꼬마. 체력은 바닥을 때렸고 정신줄은 진작 가출한 상태. 세 살 아이 마냥 엉엉 꺼이꺼이 소리 내어 딸꾹질이 나올 정도로 오열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 등을 툭툭 쳤다. NBA 농구 유니폼을 입고 목에 금목걸이를 두른 흑인 오빠. 날 보며 하얀 치아가 다 보이도록 씩 웃더니 말을 건넸다. “Hey~Smile!” 한 마디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외로웠던 마음을 위로받으니 다시 강단이 샘솟아 찬란한 햇발같이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그제야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잊을 수 없었던 벅찬 감동을 받고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해 준 흑인 오빠 땡큐 베리 쏘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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