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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Mar 13. 2020

SNS, 관계의 울타리를 정비하며

제 흥에 겨워 사는 법

 2020년 독서 모임 [반짝이는 달력 모임]에서 각자의 1월에 이름을 붙여 보는 활동이 있었다. 나의 1월은 “관계의 울타리를 정비하는 달”이었다. SNS라는 관계망 속에 여기저기 울타리를 뻗쳐 놓고 살다 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사진으로 일상을 들여다보고,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읽으면서 마치 잘 아는 사람처럼 함부로 말을 건넨 적도 많았다. 신중하게 댓글을 달거나 성의 있게 답글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어느 날부터 과부하가 걸렸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없이 더없이 친근하고 화기애애하게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말로만 관계를 맺는 데 한계를 느꼈다. 그렇다고 글로 쌓아가는 관계가 전부 다 회의적인 건 아니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어도 정이 쌓이는 사람이 있고, 글만으로도 차곡차곡 신뢰가 쌓이는 사람도 있었다. 티 나지 않게 오래 나를 지켜보며 조용히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감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갈급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겐 다정한 안부를 물으며 정성스럽게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었다.

 다비드 칼리가 쓰고 고치미가 그린 그림책 <4998 친구>를 처음 보았을 때의 첫 느낌은  푸른 색감처럼 서늘했다. 가끔 블로그 이웃의 숫자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휴대폰에 저장된 570명의 연락처에 의아해지기도 한다. 내 친구는 도대체 몇 명일까? 친구의 범위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 걸까?

 관계의 밀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내가 한심했다. 문득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나이 듦, 그 편견을 넘어서기>에서 하트포트 펀드(Hartford Funds)의 수석 부사장 존 딜이 제시한 '미래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질문 세 가지 중 하나인 '누구와 점심을 먹을 것인가?'이다. 나이 들어서 어디에서 살 것인가, 계속해서 인생의 소박한 즐거움을 누리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뒤에 이어진 질문이다. 가장 중요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이 질문은 당신이 나이 들었을 때 사회관계 유지와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에 관한 질문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이 아니라 실제적인 관계이다. 당신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는 당신의 건강하고 활동적인 생활양식에 도움을 준다. 그들은 당신이 동네 커피숍에서 함께 만나는 사람들이며, 영화와 콘서트, 쇼핑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고, 교회나 북 클럽 친구들이다.

-조 앤 젠킨스, <나이 듦, 그 편견을 넘어서기>, 청미, 207쪽


 재기 발랄한 그림책 <4998 친구>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4,998명의 숫자와 맞먹을 강력한 숫자가 등장한다. 점심을 같이 먹고, 게임을 같이 하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눌 친구의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팔로워 수가 많아지고 친해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작 마주 앉아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을 계속 기다리게 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느라 정작 내 주위를 살피지 못했었다. 주변을 돌아보게 해 준 이 질문 덕에 내 울타리는 여전히 정비 중이다. 실제 삶에서 머리를 맞대고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관계의 어려움에 마음 다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안아주고 싶다면, 관계의 울타리를 조금은 안으로 좁혀야 하지 않을까. 같이 점심을 먹는다는 건 시간과 마음과 돈을 써야 하는 일이고, 그건 4498명이나 되는 친구들과 할 수 없는 일이다.


 "화면과 마음에만 존재하는 '텍스트'는 나에게 책이 아니다. 책은, 진짜 책은, 언어의 화신은 육체적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라는 웬델 베리의 글을 사회관계망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되새긴다. 바람직한 관계 맺기의 대안으로 북클럽을 예시로 든 조 앤 젠킨스의 글이 반가웠다. 책을 육체적 삶의 일부로 만드는 데 있어 책모임 만한 게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파생되는 어려움에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자기 삶의 주체로 서는 연습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책모임 아닌가!
 SNS라는 넓디넓은 울타리 안에서 많은 사람과 친분을 맺고 있고, 부지런히 관계를 쌓아가고 있지만 수시로 나는 헛헛함에 시달리고 갈 곳 몰라한다. 쉽게 가까워지고 어느새 멀어지는 모습에 마음을 다치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독서 모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관계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애쓴다. 책의 언어로 소통하며 실제의 삶 속으로 초대할 방법을 고민한다.

 1월 한 달, 울타리를 바짝 안으로 다시 옮겨 정비했다. 내 삶의 반경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성의 있게 그들을 맞아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언제든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구에게든 필요하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이제 남의 울타리를 기웃거리기보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제 흥에 겨워 사는 법을 익혀야 되는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머무는 자리를 풍성하게 가꾸는 사람, 은은한 향기를 울타리 밖으로 흘려보내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초대하는 사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는 사람, 내가 그리는 50대의 모습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으로 일상을 꾸려나가는 사람, 머무는 자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다고 울타리 너머의 세계를 포기하지는 않겠다. 작년에 혼자 베를린 여행을 감행한 것처럼 가끔은 용기 내서 낯선 세계로 떠날 것이다. 아직은 육체의 한계가 발목을 잡을 리 없고, 집안일에 헌신한 기간만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자격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SNS라는 관계의 울타리 안에서 오늘도 여전히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한다. 자주 흔들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와 내밀한 언어로 소통하며 연결되는 순간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실제의 삶에서도 온기 넘치는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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