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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Mar 13. 2020

나이 듦이라는 가능성

가장자리로 갈수록 더 잘 보여요

 2018년 12월, [선향] 독서모임에서 <나이 듦, 그 편견을 넘어서기>를 함께 읽었다. 나이 드는 게 두려운지 기대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 불편하고 서글퍼지는 일도 많지만 나이가 주는 선물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통찰력과 혜안,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축적되는 경험 속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노년의 삶을 준비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보험이나 연금 등 경제적인 대비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급급해서 10년 뒤, 20년 뒤의 노후 생활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준비를 하며 사는 건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얼마의 돈이 필요할지,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두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해서 병원과 의료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두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정작 나를 위해 자세히 고민해보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닥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살아오다가 노화나 죽음과 상실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으면서 깨달았다. 결국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깊이 성찰할수록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거라고. 나이가 들수록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매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이런 류의 책을 읽은 덕분이다.

 <나이 듦, 그 편견을 넘어서기>를 쓴 조 앤 젠킨스는 만 50세가 되는 생일에 그 나이를 퇴물 취급하는 지인들의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인종과 성별, 소득뿐 아니라 나이로도 규정되지 않으리라 결심'(22)하며 고령화를 문제로만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기회와 가능성, 새로운 이야기로 전환시킨다. 

50세 이상의 우리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성장하고 배우며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추구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일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한다. 전통적인 은퇴 후의 10~15년을 계획하는 것 대신에 우리는 30년, 40년, 혹은 그 이상의 참여적이며 보람 있는 삶을 내다본다.
- 조 앤 젠킨스, <나이 듦, 그 편견을 넘어서기>, 청미,  234-235쪽


 "50이 낼모레인데 뭘 새로 시작해. 누가 써 준다고. 애들 다 키웠고 이제 우리 할 일은 다 끝났지." 이런 유의 말에 수긍하고 싶지 않다.

“아니요, 100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50년도 열심히 살아야죠. 죽을 때까지 배우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야지요.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일은 너무나 많거든요.”

“이제는 부모님들과 사별하거나 여러 친척들을 떠나보내며 슬픈 일들 투성이일 거야. 여기저기 아픈 몸으로 살아야 하고, 우울하지 뭐.”

맞는 말이라 동조하면서도 나는 자꾸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려고 애쓴다.

‘나의 일상을 어떻게 아름답게 가꾸며 살 것인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어떻게 지켜나갈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나이라는 것은 가슴 서늘한 자각이기도 하고 희망이고 욕망이고 절망이기도 하다. 살아갈 용기를 주는가 하면 걸림돌이고 빛남이면서 부끄러움이기도 하여 살아가는 날들이 바로 죽어가는 날들이라는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오정희 <내 마음의 무늬>. 황금부엉이, 43쪽


나에게 나이 듦은 현실이다. 매일매일 나이 들고 있고, 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마음가짐, 인격, 삶을 향한 애정)과 조금은 아쉬운 쪽으로 변해가는 것(주름, 질병, 나이 제약 등)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마음 편히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품위 있게 살려면 뭐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걸 절감한다. 그 일이 돈을 버는 일이면 좋겠지만 돈과는 무관한 일이어도 가치 있게 평가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아이를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텀블러를 사용하고,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을 읽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런 의미 부여가 내 삶의 기반을 든든히 다지는 일이자 이 사회에서 한 개인이자 좋은 시민으로서 자리매김하며 사는 길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의 대학교육, 취업 준비, 결혼, 남편의 퇴직, 부모님의 노후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두려움이 엄습한다. 필요한 돈 걱정부터 앞선다. 나이 듦은 현실이다. 해결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생각이 뒤죽박죽 엉키고 무력감이 스멀스멀 밀려올 때 어떻게 고상하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의 문제는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품위 있는 노후를 꿈꾼다. 그래서 책을 펼친다. 낙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도피하듯 책을 읽는다 해도 그 안에서 헤매는 건 안전하다. 책 속에 명쾌한 해답이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무기력과 불안을 뚫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첫걸음이니, 다만 읽을 뿐이다. 

 나이 듦은 현실이다. 실시간 진행형이다. 그저 매 순간 의식하며,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을 뿐. 나이 들어가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이 들었다고 지레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독서 모임이 좋은 대안이 될 거라 믿는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통한 교류와 소통이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무언가 꾸준하게 하는 일이 몸과 정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면 함께 모여 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며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삶부터 잘 돌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듦은 하루하루 소멸을 향해가는 것,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는 편견에 맞서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 속에서는 언제든 나를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희망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여든의 나이에 접어든 노학자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이르러보니 세상은 더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한다. '저 깊은 곳 아래 모든 추락의 한가운데서는 새로운 삶의 씨앗들이 항상 고요히 그리고 넉넉하게 파종되고 있었다.'(227)는 그의 고백에 숙연해진다. 가장자리를 향해 가는 길이 그리 서글픈 일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가장자리에서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한 가지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저 바깥에서 벌어지는 모든 '추락'은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대지가 또 하나의 녹색 반란을 준비할 때 씨앗들은 파종되고, 잎들은 퇴비가 되는 것이다. 오늘 인생의 늦가을을 견디면서 나는 자연이 믿을 만한 안내자임을 깨닫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모든 것을 응시하기란 쉬운 일이다. 관계의 해체, 잘한 일들의 소멸, 목적의식 및 의미의 쇠퇴...... 하지만 가을은 대지에 그렇게 하듯, 삶이 우리에게 '퇴비를 주며' '씨앗을 뿌린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가장 힘든 시기에도 우리 안에 가능성이 심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파커 J. 파머 ,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글항아리,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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