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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May 09. 2020

불타버린 숲의 기억

그림책 <호랑이 바람>  김지연 작가님 북토크  첫 번째 이야기

불탄 숲을 보다


지난 4월 속초의 한 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눈부신 벚꽃길이 이어지다가 한적한 도로로 들어섰는데 뭔가 이상했다. 연둣빛 어린 나뭇잎들과 벌써 초록빛이 무성한 나무들이 펼쳐지는 왼쪽과 달리 오른쪽으로는 온통 무채색의 그림 같았다. 속도를 멈추고 창을 열어 보았다. 까맣게 불탄 나무들이 서 있었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오른쪽 숲길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려 나무들 가까이 가보았다. 까맣게 타버린 나무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손을 대자 검댕이가 묻어났다. 나무 기둥을 안고 한참을 서 있었다. 눈물이 줄줄 흘러 고개를 들었다. 붉은빛을 띤 채 여러 갈래로 나무의 속살이 벌어져 있었다. 기둥을  어루만지자 숯이 되어 버린 조각이 떨어졌다. 바닥에는 타지 않은 솔방울이 몇 개 떨어져 있었고, 나무 둥치 주변에는 작고 여린 가지에 진달래가 한 송이 피어 있었고, 군데군데 초록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강풍주의보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4월 한 달 동안 뉴스에 강풍 주의보가 뜨거나 산불 재해 방지 안내 메시지가 뜰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제발 여름까지 아무 일 없기를 바랐다. 책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무 조각에 자꾸 눈길이 갔다. 속초에 가면서 고성 지도를 여러 번 들여다보았다. <호랑이 바람>을 읽은 지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고성 쪽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차마 못 꺼내고 있다가 그 숲에 들어선 거였다.

남편은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남편은 오래 숲을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산림 피해복구는 건축물 피해 복구에 비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벌채를 하고 다시 나무를 심기까지 2022년까지 3년 차 사업으로 진행을 추진 중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불탄 모습 그대로 있는 숲이 속초 곳곳에 보여서 당시 화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절감했다. 이재민들의 생활 터전도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 일 년이 지나도록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기도 했다.


감당하기 힘든 비보


지난 5월 1일 고성 산불 속보 소식을 보며 가위눌린 듯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재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오그라들지만 고성 소식은 더 가슴을 짓눌렀다. 불과 얼마 전에 까맣게 탄 채 서 있는 나무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온 터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며칠 뒤에 고성 산불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호랑이 바람> 작가 북 토크가 예정되어 있어서 더 그랬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밤새 끙끙댔다.

직접 현장 답사를 하며 작업하시는 작가님 성향을 들었던 터라 이런저런 걱정이 몰려들었다. 잠을 자는 사이에도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탈 거라는 생각을 하니 잠을 쉬이 이룰 수가 없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아들이 제주에 수학여행을 가 있었고, 2019년 고성 산불 때는 딸이 인근 호스텔에서 워크숍 중이었다. 재난 앞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경험들이다.

다행히 산불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림책을 다시 펼쳤다.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책에 의지하고 싶었다.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모임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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