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그 사람이 떠오른다면
친한 사이에 대한 새로운 정의
책을 읽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적확한 언어로 표기된 관계의 정의에 딱 맞는 사람이 떠오르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일 테니 말이다.
절친,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친한 친구, 일반 친구보다 사이가 더욱 좋고 더욱 친한 친구’라는 사전적 의미 속에 이미 여러 층위의 관계가 드러난다.
친구, 덜 친한 친구, 더 친한 친구, 사이가 좋은 친구, 더욱 사이좋은 친구.
철들고 난 이후 마음이 괴로웠던 순간을 헤아려보면 관계의 밀도를 따지느라 감정 소모를 하던 때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삼총사라 불리던 고등학교 때 친구를 생각해보더라도 셋이 균등한 마음의 분배가 되지 않아 투닥거릴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질투하고, 서운해하고, 한 친구에게 더 끌리는 마음을 감추느라 신경이 곤두섰던 경험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아이를 낳고 이웃들과 어울려 지내면서도 누구 엄마랑 더 친하게 지내는지 서로들 신경을 쓰지 않았던가. 내 아이들과 잘 맞는 친구의 엄마랑 잘 지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유익한 정보를 가진 학부모들과 어울리기 위해 어색하게 앉아 있던 시간은 또 얼마나 괴로웠는지. 자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어울려 다니는 시간이 길어도 결코 절친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온 나라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퍼져가는 3월 3일 보낸 사람을 알 수 없는 택배 상자를 받았다. 커피와 초콜릿, 견과류 한 통이 들어 있는 상자에는 제조회사 주소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누가 보낸 선물이라 짐작하면서도 확인을 해봐야 받을 수가 있을 것 같아 회사로 전화를 했다. 예상되는 사람 이름이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북 코디네이터 공부 모임을 함께한 선생님이셨고, 2018년 11월 처음 만났다. 바로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일상적인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향긋한 커피를 한 잔 내리고 초콜릿을 예쁜 찻잔과 접시에 세팅한 사진을 문자로 보내며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렸다. 곧 답장이 왔는데, 녹음파일이었다. 다시 읽고 있는 <랩 걸>에서 아주 좋아하는 구절이었다. 천천히, 또박또박 맑고 힘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온기 넘치는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도는 순간 새 메시지가 떴다.
‘며칠 전 밤에 <랩 걸>을 읽다가.. 갑자기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불쑥! 선생님께 무슨 선물을 드리지.. 고민하다가 제 마음을 보냈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빌에게 그가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절대 앞으로도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그의 친구가 있다고, 그 친구들은 절대 빛이 바래거나 녹아 없어지지 않을, 피보다 더 진한 무엇인가로 그와 튼튼하게 묶여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빌이 알게 해 주고 싶었다. 내가 숨을 쉬는 한 그가 배고프거나 춥거나 엄마 없는 아이처럼 살지는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두 손이 다 있지 않아도, 주거지가 불명확해도, 폐가 깨끗하지 않아도, 사회적 예절이 부족해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명랑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된다 하더라도 내 첫 임무는 세상에 구덩이 하나를 파고 빌이 들어가서 괴팍한 자기 모습 그대로 안전하게 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될 것이다.
<랩 걸> 호프 자런, 알마 p351
‘너무 좋아하는 구절이에요~ 선생님 낭독은 깊은 울림이 있어요. 새벽의 고요함이 함께 전해 지네요. 빌과 호프의 관계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저릿해요. 서로를 고양시키는 관계. 선생님도 제게 그런 분이시죠. 저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 이 구절을 읽으시며 저를 생각해주신 것만도 너무 감동이 되어요.'
모든 독서 모임이 취소되고 한 달이 넘도록 집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으며 지내고 있던 때였다. 관계에 대한 점검이 저절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명확히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있어도 구체적인 말과 행위로 관계를 가꾸어 나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날 이후 코로나 19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6월에 이르기까지 몇몇 지인들로부터 비슷한 문자나 전화를 받았다.
"나무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예전에 모임에서 나무에 대해 들려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그때 이런 심정이셨구나...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
"<그리운 메이 아줌마> 책을 보면 선생님이 떠올라요."
"책방에 <스토너>가 있더라고요~ 스토너 표지에 대해 얘기하던 게 생각났어요, 하하"
아무래도 나에게 친한 사람이란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같이 놀러 다니는 사이가 아닌 것 같다. SNS에서 더없이 친밀함을 과시하는 사람도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동창들도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친구는 더 이상 친근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참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다 생각나는 사람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지고 그리워지곤 한다. 어떤 구절을 읽다가 얼른 달려가 그 사람 앞에 책을 들이밀며 "이것 봐봐, 딱 당신 같지 않아? 하하하." 이렇게 흥분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절친이라 부르고 싶다. 어떤 장면에서 생각난 사람 때문에 사무치게 가슴이 아파오면 그제야 몹시도 아끼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그러니 책을 보다 내가 생각났다는 그 사람들을 어찌 내 사람이라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 친한 나의 책 친구들 덕분에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 함께 책을 읽으며 서로의 삶에 잊지 못할 흔적을 남기는 독서 모임을 계속하는 한, 나는 누구보다 친한 사람이 많은 사람 부자로 살게 되겠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