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카곶
호카곶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버스 정류장과 기차역 사이 거리가 있어, 우선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마주했다. 가운데 원통형 부분의 골조를 덮은 창문은 청량한 물빛이었고 지붕은 파도 혹은 모래 둔덕을 닮았다. 건물의 양식이 해변가와 어울려 보였고, 이 지역의 풍경을 덧대어 설명해 주는 인상을 받았다. *사족이지만, 지명 카스카이스 Cascais는 포르투갈어 cascal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조개 더미'를 뜻한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포르투갈을 돌아다니면서 신기한 형태의 건축물을 많이 봤는데, 여기도 그중 하나였다.
외부가 신기하고 내부가 궁금해서 쇼핑몰에 들어가 돌아다녀보고 싶었다.그런데 푸른색 창 안을 들여다보니 왜인지 건물 안이 텅텅 비어있었다. 기묘한 인상을 받았다.
찾아보니 2년 전에 폐업했다고 한다.
https://maps.app.goo.gl/wcb95Aujz3NApEvk8
가보니 두 구역으로 길게 나눠진 정류장이 있었다. 버스 터미널 안내판을 확인한 후, 나는 C 정류장으로 향했다. 좀 기다리니 노랗고 큰 버스가 왔다.
버스에 탄 후 카드를 찍고 뒷출입문과 가까운 오른쪽 라인 좌석으로 향했다. 보니까 왼쪽 라인에 동북아시아인처럼 보이는, 그리고 나랑 비슷한 나이일 것 같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특히 그녀가 입고 있던 외투에, 당시에 내가 입고 있던 바람막이와 동일한 브랜드 로고가 쓰여 있어서 속으로 '한국 사람인가?'라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 나는 아까 같이 버스를 타고 온,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사람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면 (주제는 기억이 안나지만) 버스 뒷문에서 어떤 상황이 있었는데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한국어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카곶 임시 동행이 결성되었다.
나는 그녀와 통성명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앞으로 이 글에서는 J라 부르겠다) 왜 이곳에 여행을 왔는지, 숙소는 어디로 잡았는지 등등 스몰토크를 했다. 동시에 발걸음은 호카곶 절벽 가까이로 옮겼다.
호카곶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했다. 생애 처음 본 대서양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사방에 푸른 바다가 보인다는 게, 그리고 저녁에 가까워진 시간이 노을의 형태로 이 풍경에 낭만을 양념처럼 더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옆쪽에 경찰차와 경찰이 있었고, 그 근방으로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누가 저 밑으로 떨어진 걸까? 살짝 무서웠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도 몇몇 있었다. 주변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왼편으로는 돌로 바닥이 가득한 길이 있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아플 것 같았다. 우리는 조금 더 완만한 길을 찾아서 절벽을 따라 걷기로 했다. 여기 온 여행객들 중 출입 제한 구역 너머인 절벽 끝쪽의 돌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보면서 '저기 앉아있음 무섭지 않을까? 배짱이 좋다'라고 생각했다.
이 근처를 걷다가 J와 나는 서로 가져온 필름카메라로, 바다를 배경으로 각자의 사진을 찍어줬다.
관광안내소 건물 근처에서 군밤을 팔고 있는 아저씨와 군밤 수레를 만났다. 출출해서 군밤을 사 먹기로 했다. J는 군밤 판매 수레에 한글로 '밤'이라 쓰여 있는 걸 보고 즐거워했다. 나도 여기서 한글을 보았다는 게 신기했다.
군밤을 까먹으며 언덕을 따라 산책을 했다.
나는 이 곳에 와서 J를 만난 게 좋았다.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뜻밖의 우연' 이벤트처럼 느껴져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 뿐만 아니라, J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와 나의 소소한 공통점을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또, 낯선 외국어로 가득 찬 나라에서 마침내 또래 한국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편안했다. 참고 있던 숨을 확 내뱉는 느낌이라 해야하나.
기념품 샵에서 J와 함께 기념품을 구경했다. 양말도 팔고, 이것저것 팔고 있는 게 많았다. 나는 엽서를 한 장 구매했다. 코르크로 만든 종이 위에 호카곶 이미지를 인쇄한 상품이었는데, 내 방 한쪽 벽에다 붙여두고 엽서 속에 담긴 풍경을 두고두고 볼 마음이 있었다.
하늘이 더 많이 어둑어둑해져서, 아까 내렸던 정류장으로 다시 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J와 한 이야기 주제 중에 '앞으로의 여행지'가 있었다. 들어보니 둘 다 '포르투Porto'(포르투갈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를 여행하는 시기가 겹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음 좋겠다고 이야기했었다.
한쪽에서 등대 속 불빛이 제 머리를 360도로 돌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등대를 본 기억이 없어 그런지 광경이 많이 신기했다. 그림에 나올 것 같이 빨갛고 귀여웠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 “투 더 문”이 생각났다.
J는 나와 다른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카스카이스로, 그녀는 신트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신트라행 버스가 먼저 왔고, J가 먼저 떠났다. 나는 남아서 카스카이스 해변행 버스를 기다렸다. 바람이 불고 추웠다.
버스를 탔다. 내 옆자리에는 중국어를 쓰는 아주머니가 앉으셨다.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기 직전에 '숙소 가기 전에 카스카이스 해변을 보고 갈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이미 주위가 너무 어두워져서 계획했던 귀갓길을 벗어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카스카이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숙소 근처 역인 Alcântara-Mar 역으로 돌아왔다.
https://maps.app.goo.gl/jQsgV4iA4m467KXd6
<사족- Alcântara-Mar 기차역의 지명유래>
알칸타라 Alcântara는 벨렝이나 바이샤 같은 리스본 지구(구역) 중 하나로, 아랍어로 '다리(bridge)'를 뜻하는 단어 'al-qantara'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참고] 그리고 뒤에 붙은 Mar는 '바다'를 뜻하는데, 추측하건대 기차역이 알칸타라 지구에 있고, 지역 내부에서도 바다 근처에 존재하는 역이라 단어 Mar가 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기차역 위쪽으로 좀 가면 Alcântara-Terra 역이 있다. Terra는 '땅'을 뜻한다.
아, 기차역에서 숙소까지 오면서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기차에서 하차를 한 후에 숙소로 돌아오는 와중에, 문득 역에서 카드를 찍어야 하는데 안 찍고 온 걸 깨달았다(미리 말하자면 기차에서 내릴 때는 카드 안 찍어도 된다). 한국이랑 똑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교통카드를 찍는 단말기가 있을 경우, 승차할 때도, 하차할 때도 카드를 태그기에 찍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인터넷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막... 부정승차를 하면 벌금을 크게 문다고 해서 '안 찍고 왔는데 어떡하지;;'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결국 불안한 마음과 함께 역으로 다시 돌아갔다. 근데 찾아보니까 벨렝역에서 출발할 때 찍었던 거랑 비슷하게 생긴 카드 태그기만 있었는데, 여기에 다시 카드를 인식시켜도 되는지 몰라서 행동하는 게 망설여졌다. 그리고 주변도 밤이라 어둑어둑해져서 단말기 스크린에 뜬 글씨도 잘 안보였다.
그렇게 혼자 인적 드문 승강장 위에서 서성이다가, 친절해 보이고 잘 도와줄 것 같은 근처에 지나가던 현지인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영어로 내 상황을 설명하고 괜찮은 건지 물어봤다(이 과정에서 소통이 잘 안 되긴 했는데, 그럼에도 외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그분께 감사하다).
한참을 무언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숙소가 이 근처고 나는 카스카이스역에서 지금 이 역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분이 '너 여기 살아?(You live here?)'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다고 했다. 일단 임시긴 하지만 어쨌든 여기 머무르고 있는 건 맞으니 말이다. 그랬더니 그분이 갑자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녀는 기차 승강장에서 역사 지하 내부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갔고, 나도 뒤를 따랐다. 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나한테 '그냥 가'라고 했다. 그리고 (카드) 안 찍어도 된다고, 문제없다고 했다. 그래서 감사인사를 하고 '휴, 괜히 마음을 졸였네'란 생각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사실 벨렝에서 카스카이스역으로 갔을 때는, 카스카이스 역에서 나올 때 카드를 찍고 나오긴 했었다. 그래서 더 헷갈렸던 것도 있다. 만약 개찰구가 따로 없을 때는 그냥 처음에 탈 때만 승강장 어드메에 있는 태그기에 카드를 찍고, 내릴 때는 안 찍고 그냥 출구로 나가면 되는 것 같다.(이 여행에서 머물렀던 앞으로의 모든 기차역이 이랬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다음 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