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성은 “한”이고, 이름은 “일수”이다. 한자로 쓰면 성인 “한”은 “韓”이라 쓰고, 이름인 “일수”는 “一洙”라고 쓴다. 아버지의 이름은 분명히 할아버지가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사람들의 이름에는 특별한 뜻이 있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나의 예를 들어보자. 나의 이름은 한자로 “臺雄(대웅)”이다. “관청 대(臺)”자와 “수컷 웅(雄)”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이름에는 “성공”, “크게 된다.”, “관운” 등의 의미가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나의 성과 이름 “한대웅”은 거꾸로 읽으면 “웅대한‘이 된다. 세상에 이보다 더 엄청난 이름이 있을까?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에는 그런 의미가 약하다. 아니 의미가 없는 듯하다. 한자로 “一洙(일수)”의 “一”은 하나를, “洙”는 “물가”를 뜻한다. 두 글자를 합쳐보면 “하나의 물가”라는 정도밖에 연상되지 않는다. 이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가 봐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름을 지을 때,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에게 물어본 결과, 이름이 “일수(一洙)”인 이유를 할아버지가 설명을 해준 적이 없고, 또 아버지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
어쨌든 할아버지는 그 시대의 일반적인 관례대로 항렬자인 “수(洙)”를 사용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은 한글로 “일수”이고, 한문으로 “一洙”이며, 작은아버지(동생)은 “일”자 대신 “이”자를 사용해 한글로 ”이수”이며, 한문으로 “二洙”가 되었다.
만약 아버지에게 둘째 남동생이 태어났다면, 그의 이름은 한글로 “삼수”이고, 한문으로 “三洙”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요즘 대학 입시와 관련해 웃겼을 것 같다. 누구나 알다시피 고등학생들이 대학을 갈 때, 처음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세 번째로 입학시험을 볼 때, “삼수”라고 하는데, 아버지의 둘째 동생의 이름이 “삼수”니, 사람들한테 놀림을 당했을 것 같다.
아버지는 1941년 음력 9월 17일, 양력 9월 9일에 태어났다. 누구나 알다시피 1941년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였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정확히 2달하고, 28일이 지났을 때인, 그해 12월 7일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그 결과 역사책에 쓰여진 대로 유럽과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2차 세계대전은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아버지는 일본의 만행 몇가지를 할아버지와 동네 어른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을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나이는 고작 5살에 불과했다. 아버지에게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기억은 10살 때 벌어졌던 한국전쟁이 최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