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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 읽기 Nov 07. 2018

남편인가 남 편인가?

[그녀가 묻고 한 박사가 답한다] 운동 때문에 남편이 ‘남의 편’이에요

이 글은 한태룡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정책개발연구실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아내가 고민합니다.


우리 남편은 체육과 졸업생으로 현재 헬스장 퍼스널 트레이너입니다. 게다가 소위 아이언맨(iron-man)입니다. 아마추어 철인삼종경기에서 한가닥 하는 인간이라는 뜻이죠. 그의 연간 일정은 여름에는 대회, 그 외의 계절에는 트레이닝으로 정리됩니다. 이런 남편을 '모시고' 살면서, 집안 대소사에서 가사노동까지 모두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더 속 터지는 건, 이게 주변에 불평해도 먹히지가 않는다는 것이죠. "술, 담배에 찌든 우리 남편보다 얼마나 건강하냐"고 핀잔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는 음흉하게 웃으며 ‘복도 많아~~’ 식으로 나오죠. 게다가 장비는 어찌나 비싼지. 6백만원이 넘는 자전거, 여분 바퀴 한 쌍에 2백(사실 이것도 액면 그대로 믿기지는 않습니다). 옷과 장비로 옷장과 창고가 가득 차 있어요. 방청소는 일절 안하면서 장비는 잘도 닦죠. 자식보다 더. 


저는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타입입니다. 주말에 손잡고 대형마트에 가는 것, 시간 내 한강 산책 나가는 정도의 행복을 기대해요. 그런데 주말이면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주중에 빡세게 트레이닝을 해서 힘들다며 저를 멀리합니다. 제게 이런 소소한 행복은 언제쯤 찾아올 수 있을까요?      


소크라태룡이 답합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인생 상담과 전문가적 상담을 구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번에는 우선 인생 상담에 집중하고, 다음번 글에서는 전문가인 척 해 볼께요.

 
일단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대한 전략을 세우셔야 합니다. 남편이 술독에 빠져서 가산탕진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좋겠다는 말에는 공감해주셔야 할 듯 보입니다. 남편분의 성격 상, 운동하는 정도로 술에 탐닉하셨다면 1년도 못 되어 뼈도 추리기 힘들 지경이 되었을 것이고, 술값과 병원비가 철인 삼종 장비에 들어가는 돈의 10배는 더 되었을 겁니다. ‘나쁜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악은 아니다’라고 치부하십시오. 다만 ‘복도 많아’에 따르는 음흉한 미소에는 조금 단호하게 팩폭(팩트폭력)을 시현해주세요. 다음과 같은 답 정도가 개인의 만수무강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적절해보입니다.


"대회 앞두고 근처에도 못 오게 하고 힘은 엉뚱한 길바닥에다 쓰고 있는데, 복은 쥐뿔!!!"


하지만 작은 행복과 관련하여 꼭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마 남편분의 상태를 보아하니 주말에 한강에 가자고 그러면, “한강? 나는 맨날 거기서 운동한다. 택시기사가 주말에 드라이브하는 것 봤냐? 개그맨도 집에서는 웃기지 않는다” 식으로 반응할 겁니다(너무 정확해서 깜짝 놀라셨죠). 이건 큰 문제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가족구성원의 스포츠 활동에는 주부의 희생이 전제됩니다. 처한 상황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자녀가 유소년 야구리그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감수해야 하는 돌봄 노동에 대한 연구보고서가 생각나네요. 거기서 어머니는 기념 티셔츠 구입, 대회와 관련된 각종 장식, 아들이 리그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리는 휘장 및 각종 기념품 제작, 유니폼 및 장비의 매입과 수리 및 청소,  응원단관련 업무 등 팀의 조직과 운영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또한 경기 및 연습을 위한 교통수단 제공, 가족의 경기구경을 위한 음식준비 등 가정에서 해야 할 일도 전담합니다. 남편이란 작자는 구경만 할뿐이죠. 심지어 이렇게 호강을 받은 애들은 이게 당연히 지들이 받아야 할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에 저자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미국 중산층 사회 속에서 젠더 불평등을 강화, 재생산 시키는 도구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호주에서 가족구성원이 테니스를 즐기는 가정에서의 가사노동을 연구한 결과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주부의 희생이 너무 심해서 저자는 ‘경기는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정도니 앞서의 경우보다 더 가관이죠. 결혼 초 테니스만 치는 아빠 덕에 육아를 전담해야 하고, 그 아이가 자라나서 테니스를 치기 시작하면 레슨이다 시합이다 교통편 제공(호주의 땅덩이가 얼마나 넓은지 아시죠), 특식 만들기로 고생합니다. 그래서 엄마 중에 직장(하다 못해 임시직이라도)을 가진 경우는 한건도 없었고, 남편이라도 벌어야 해서 테니스와 관련된 가사노동이 그들에게 전담됩니다. 드디어 애가 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하면 운전에서는 벗어나게 되지만, 이제는 그 아들이 아빠와 한통속이 되죠. 남자 다섯 명이 내놓는 빨래로 하루에 세탁기를 네 번 돌릴 때도 있다 합니다. 애들이 모두 커 결혼하여 테니스 관련 가사노동에서 벗어날 쯤 되면, ‘내 청춘 돌리도’ 하는 식이 됩니다.


이 두 가지 연구를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됩니다.


첫째, 스포츠를 즐기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가사노동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둘째, 그러다보면 가사노동을 여성이 전담하기 시작한다. 셋째, 이윽고 역할분담이 이렇게 고착화되면 여성은 스포츠로 인해 착취당하는 입장이 된다.       


상황에 의해 희생을 받으신 분들에게 너무 가혹한 말인 것 같아 미안하다는 것을 전제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엄마의 탓도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엄마가 애들과 아빠를 싸가지 없도록 만든 거라고도 볼 수 있죠. 지들 좋아서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가 져야지, 운동을 하는 게 무슨 벼슬이라고 이렇게까지 떠받들어져야 하는지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아직은 상황이 ‘고착화’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단호히 남편이 운동하는 데에 기여한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시고, 이에 합당한 상대의 행동을 요구하세요. “내가 한 게 얼만데 니가 마트도 안가?” 식으로 덤비세요. 이 경우 행복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호주 테니스의 경우처럼 ‘내 청춘 돌리도’ 되는 상황을 상상하시면서 힘을 내보세요. 건투를 빕니다.

    

다음에는 운동중독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문가 '삘'을 발휘해 해보겠습니다.


p.s.) 호주의 테니스와 관련한 연구에서 운동에 따른 부부갈등이 없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경우 대부분 두 사람이 함께 테니스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그 글의 저자도 ‘말릴 수 없다면, 함께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하여 드리는 말씀인데 처음부터 철인수준으로 달리는 것은 힘들겠지만, 짧은 거리라도 함께 즐기는 것을 권합니다. 알게 뭡니까? 하다보면 철인 부부가 탄생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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