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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 읽기 Dec 26. 2018

왜 이놈의 사회는
나에게 운동을 강요하는가?

'운동 강권하는 사회'에서의 고민과 상담

이 글은 소위 '운동 강요하는 사회'에서의 고민과 관련,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정책개발연구실 한태룡 실장의 고민상담 글입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자의 고민]

저는 어릴 때부터 체육시간이 싫었고, 지금도 운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운동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사무직원으로 일에 쫓겨 야근이라도 하는 다음 날이나,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처지에서 체력에 한계를 느끼긴 하지만, 그건 나이듦에 따른 자연적 현상으로 인정하거나 가사를 분담하는 조처로 어찌 어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나 건강검진을 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40대 초반이라서 그런지, 예전보다 뱃살이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것도 평소 소식(小食)을 하는 습관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년배보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보세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그런데 요즘은 이전에 비해 주변에서 운동에 대한 강요가 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운동을 하면 좋으니 몸 좀 움직여보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요즘에는 운동 안 하면 게으르다거나 일상에서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듯합니다. 


제가 문제인가요? 사회가 문제인가요? 


[한 실장의 고민 상담]

우리의 일상이 그러하듯 보내주신 사연도 많은 세부주제가 함께 뒤엉켜 있는 문제라서 하나하나 점검하며 이야기를 풀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점검해야 할 주제는 말씀하신 ‘운동’이란 겁니다. 여기서 운동이란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스포츠의 범주가 아니라 트레이닝과 단련의 의미라고 판단되고요, 이 둘은 특별히 구분되어 논의해야 진도가 나갈 것 같네요.


스포츠는 경쟁이 존재하고 그 경쟁 대상은 타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트레이닝이나 단련은 그런 측면이 덜 하지요. 하여 전자는 타인을 이기고 싶은 승부욕이 활동의 주요동기로 작용되는 반면, 후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개선이 우선됩니다. 물론 이 스포츠와 트레이닝이란 두 가지 범주는 어느 정도 서로 엉켜있습니다. 특정 종목의 동호인을 비롯하여 선수의 경우 타인을 이기기 위해 자신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스포츠 활동 속에 트레이닝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스포츠의 영역에서 타인과의 경쟁은 목적이 되는 반면 트레이닝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동네 헬스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운동 자체가 동시에 목적과 수단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사실 헬스장에 다니시는 분이 놓인 상황은 선수의 경우에 비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선수의 경우 타인을 이겨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가 상정되어 있고, 이를 지속적으로 일깨워주는 시합이라는 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헬스장에 다니시는 분의 경우 운동 동기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호기심 많은 존재인지라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기 마련인데, 트레이닝은 같은 동작의 반복인지라 하다보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생고생을 사서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덧붙여 목표 자체도 애매합니다. 선수의 경우 상대에 대한 승리가 목표여서 구체적이고 명료한 반면, 일반인의 경우, 예를 들어 ‘건강’을 목적으로 운동을 한다면 어느 정도의 건강인가, 어떤 건강인가의 문제가 운동하는 내내 따라 다녀요. 그래서 애매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한다고 할 때 ‘5개월 동안 5킬로그램을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와 ‘예뻐 보일 때까지 살 빼’ 하는 경우의 차이로 보시면 될 겁니다. 게다가 선수는 운동만 하면 되죠. 오후 5시 반에 갑자기 업무를 주는 팀장 밑에 있는 직장인의 처지를 감안해보세요. 


이런 연고로 운동을 몇 년 동안 하신 분은 의지 하나로 일가를 이룬 분입니다. 그분 스스로의 자부심도 대단할 것이고, 생활인의 한 사람으로 저도 존경할 만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백보, 아니 천보를 양보해서도 그런 분의 훌륭하심을 인정하는 것이 역으로 운동을 하지 못한 사람을 폄훼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하면 이는 경험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시대정신을 감안해서도 모두 옳지 않습니다. 


우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게으르다 혹은 자기관리를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조금만 눈을 돌려보더라도 주변에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충실해서 존경받고 있는 사람은 널렸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일에 충실하시느라 정말 운동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처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옳지 못합니다. 혹시 ‘미인은 잠꾸러기다’라는 광고카피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이에 기초하여 ‘모든 미인이 잠꾸러기’라는 명제는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잠꾸러기가 미인’이란 말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지죠. 그렇다면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성실할 수 있지만, 성실한 모든 이들이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게 되는 겁니다. 이른바 고교 수학시간에 배운 필요조건, 충분조건의 문제인데, 우리는 종종 이런 관계를 착각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당신은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훌륭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는 강요를 통해 개인을 동원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개인’과 ‘자유’가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운동을 좋아하여 멋진 몸을 가지게 된 것은 자아실현이라 보입니다만, 그 결과 모든 사람에게 운동을 강요한다거나, 심지어 운동 자체가 인간의 우열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면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강요하시는 분과 다른 게 뭐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까지 말하는 시대입니다. 즉,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자유의지가 비록 그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보인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 인정돼야 합니다. 이는 지정된 장소에서 피우는 이상, 흡연 그 자체를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급하신 사회적 압박의 내용은 운동을 좋아하는 제가 보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래도 하셔야 할 행동에 대한 조언은 드려야 할 듯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아가 건강한 사람은 주변의 압박에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식의 압박이 온다면 그냥 무시하세요. 그래도 혹여 마음이 흔들린다면, ‘내가 많이 약해졌구나’하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건 최악의 경우인데 실제로 당신에게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을 접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주십시오. 


‘니나 잘 하세요.’   


이번에는 ‘그게 옳으냐 틀리냐’를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는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느냐’로 말씀드리고자 할 거고요, 아마 제가 좀 약한 부분인 페미니즘 비스무리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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