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나름의 답변
이 글은 '왜 이놈의 사회는 나에게 운동을 강요하는가?' 그 두 번째 글입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정책개발연구실 한태룡 실장의 고민상담 형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고민]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체육시간이 싫었고, 지금도 무척 솔직히 말해서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하고, 그렇다고 일상에서 전혀 불편함도 없어요. 건강검진하면, 별 문제도 없고... 체형관리? 이 정도면 소싯적 정도는 아니지만 보기에도 괜찮잖아(내 착각인가)?
이제는 왜 이렇게 운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이야기 할 차례인 듯합니다. 이건 여성, 특히 젊은 여성과 관련된 문제여서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 너무 걱정이 되긴 합니다.
혹시 2009년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떤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했던 사건과 그 파급력을 기억하시는지요? 이로 인해 이른 바 ‘루저의 난’이 시작되었고, 당시 연말에 ‘2009년의 말’ 중 하나로 뽑힐 정도로 그 반향은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이른바 ‘키성장 시장’은 연간 7,600억원 규모로 커졌고, 성장클리닉이라는 브랜드가 나올 정도이며, 제약업계 또한 활발히 관련 상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확실히 현재 한국사회에서 키를 비롯한 신체조건은 개인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고착화된 듯합니다.
저는 이렇게 된 책임의 일부를 루저의 난과 그 이슈를 소화하는 사회적 관행의 문제로 봅니다. 누가 보더라도 루저라는 표현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는 못해서 당시 한국사회의 분노는 정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를 꾸준히 관리하지 못한 결과, 문제의 개선은 요원했던 반면 이슈의 파괴력은 계속 증폭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개선의 여지는 점점 휘발된 반면, 키 작으면 살기 힘들다는 인식만이 남은 거죠. 그 결과 그 분노가 지향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그림이 펼쳐졌습니다.
게다가 그 사건 전후의 불경기는 사람 값을 너무 싸게 만들었습니다. 자리는 없는데, 능력을 상회하는 스펙의 지원자는 넘쳐났고요. 어차피 능력은 기준 이상이니, 기왕이면 다홍치마 식으로 용모를 중시하게 된 거죠. 당시는 취직하려면 ‘어떤 키에도 사이즈는 44’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외모가 취업을 위한 자본이 되고, 이후 직장생활의 경쟁력으로 고착화됩니다. 그러면서 외모의 필수조건 중 한 가지인 ‘운동’이 강조되었던 거죠. 외모도 스펙인 세상은 모든 이들에게 운동을 선택이 아닌 필수라 웅변해 왔습니다. 뭐 요즘엔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힐링이니 소확행이니 떠들지만, 취준생이나 상사의 평가를 의식해야 하는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신선의 영역이죠.
더불어, 너무 함부로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그 대상이 여성인 경우 더욱 심하게)에 대해 입방아를 찢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봅니다. 하여 명절에 기 죽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예를 들어 살 좀 쪘다고, 그렇게 자기관리를 못해서 결혼이나 취직 하겠냐는 식으로 속 터지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해오지 않았나, 성찰할 필요는 있겠죠.
뭐, 그래서 모두가 노력한 결과 다수가 행복해진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용모의 기준이 너무 높고, 취업의 기준으로 부각됨에 따라 개인에게 강요하는 정도가 지나치게 강하다면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는 지옥도의 등장인물이 되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현재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우리사회에서 매우 지나친 운동에 대한 강조는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식의 외모지상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아무래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증폭시킨 저를 비롯한 기성세대에 있다고 보입니다. 사연을 주신 분도 40대라고 하니 저와 함께 반성합시다.
글을 정리하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이 이슈와 관련하여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운동, 좋죠! 그런데 대신 운동할 여유와 시간이나 주세요. 여유와 시간이 있어 운동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럼 당신은 젊을 때 나처럼 노력하셨어요? 듣기 싫으시다고요? 지금의 제 처지는 향후 당신 자녀의 입장이 될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그 때는 더욱 악화되어 있을 수도 있답니다.”
p.s.) 두 회로 끝내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한 번 더 해야 할 듯 보입니다. 다음의 제목은 ‘그래도 운동이라는 게, 그것만은 아닌듯해요’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