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봄볕이 좋아, 햇차 들이고
오랜만에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새로이 직함을 달고 3월을 보내느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쉬었다. 나는 때로 뭉친 근육을 주물러주거나 차를 타주면서 곁에 머물지만, 이 시기를 지내야만 해결되는 문제라서 기실 별 도움이 되진 못한다.
그래도 오늘의 대화는 이완된 분위기에서 편하게 풀렸다. 파릇한 햇녹차를 마시면서 우리가 서로를 선택했던 날들을 되새겼고, 13년이 흐른 지금에는 13년차 보이차를 우리면서 그간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폈다.
능엄경의 한 구절처럼, 결국은 시절인연이라. 어떤 변수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몸부림치며 결국은 같은 길로 갔을 터이다. 만날 사람들은 만나고, 잊혀질 인연은 또 그렇게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도 별 수 없었을 테지. 운명론에 기댄다기보다는, 우리의 시절인연을 믿어보는 것이다.
나무늘보 토우는 언제나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다락당을 지킨다. 그 늘보에게 익산의 차벗이 나누어주신 조합향을 반 대만 안겼다. 물고기가 지나는 와중에 나무늘보는 드러누워 향을 보듬는다. 꽃꽂이로 태어났으나 향꽂이가 되었다. 꽃이든 향이든 향기를 안고 사는 삶이니, 즐거운 일이다. 내 앞에 향기 머금은 이가 함께 살고 있으니, 나도 늘보처럼 복 받은 삶일 테고...
녹차를 이것저것 챙겨주신 차벗 덕에 이른 봄에 호강을 한다. 녹차향 역시 찻자리에 앞서 피운 향 못지 않다. 도균모첨, 죽엽청, 그리고 녹차는 아니지만 중국 황차인 곽산황아까지, 싹으로 이루어진 귀한 차를 연거푸 우려마시면서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앉아있었다.
누가 뭐래도 3월은 봄이겠지만,
뒤늦게 지나가는 겨울바람 등쌀에
파카와 코트를 놓지 못한 채 4월을 맞는다.
겨울을 놓지 않는 봄의 미련 때문인지...
겨울 바람에 놀란 근육을
두터운 옷으로 자꾸 품어두다 보니,
세탁소에 보낼 때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낡은 파카는 때가 눌어붙은 채로,
여전히 봄이 다 지날 때까지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옷장 앞편에 걸려 있다.
지나간 내 젊은 날의 미련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