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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생각

by 지구비행사

그는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면서도

시집을 샀다.


아주 작은 월세방의 벽에는

두 달치 월세를 미루고 산

이름 모를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나는 종종 그의 무모함을 다그쳤다.


나는 쌀독에 쌀이 그득해야

시를 읽을 수 있는 사람.


나의 집엔 출처 모를 곳에서 가져온 그림,

— 돈이 들어온다며 걸어둔 해바라기, 달항아리 같은 것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우리 집 앞에 내가 좋아하는 에스프레소 바 2호점이 생겼어.”


나는 말했다.

“매출이 얼마나 되길래 에스프레소로 2호점을 낼 수 있을까?”


그는 말없이 웃었다.


이내 나의 쌀독은 넘쳤고,

달 항아리만큼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가 좋아하는 시집을 들인다.


천박한 나는,

한심한 그를 닮을 수 있으려나.


부른 배로 시집을 읽는다.


주린 배로 시를 읽던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부른 배는 주린 배를 알 턱이 없고,

천박한 나는 너를 닮을 수 없다.


내 쌀독이 열 배로 불어난다 해도

너의 언어와 몸짓을 따라갈 수 없다.


그의 언어를,

자기 계발서 사이에 욱여넣고

너의 우아함을 아주 오래 부러워하다

‘그는 정말 한심해.’

라며 일터로 나가는 천박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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