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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는 늘 안된다고 할까?

기대에 사랑이 밀려가지 않게, 책임에 사랑이 짓눌리지 않게.

by 지구비행사

“나는 오늘 화가 났어! 다 내 건데! 엄마는 매일매일 친구 줘! 나한테는 안돼, 안돼만 하고!”

무엇이 잘못된 걸까. 오늘 우리는 꽤 행복했는데.

만 3세가 된 아이의 작은 입에서 분통 섞인 하소연이 벼락같이 쏟아졌다.
더군다나 오늘은 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던 친구들과 함께 키즈카페에서 놀았던 날이 아닌가.
나 역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미뤄두고, 온전히 네게 오늘 하루를 쏟아부었는데.


서투른 입에서 나온 말들을 곱씹어보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유튜브 노출을 줄이기 위해 외출할 때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과 미술 도구를 챙겨 다닌다.
키즈카페에 가는 날이었지만 혹시 몰라 놀잇감 바구니도 함께 들고 나왔다. 그게 문제였다.

다른 친구들이 그 놀잇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아이는 불안해졌다.
“다 비켜! 저리 가! 싫어! 다 내 거야! 친구들 싫어! 미워!”
큰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쏠린다. 친구들을 노려보며 고함치는 모습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결국 나의 호통이 터져 나온다.

“김 00! 그러면 못 써! 왜 그렇게 못된 말을 해?
계속 그러면 엄마는 집에 갈 거야!”


사건이 거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겨우 다시 잘 노는가 싶더니, 또다시 일그러지는 아이의 얼굴.
“나도 할 거야! 나도 하고 싶단 말이야! 엉엉!”

이번엔 키즈카페 안의 놀잇감 소유권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다른 엄마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런 모습을 1초도 견디지 못한 내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온다.

“너, 정말 이럴 거야? 소민이가 먼저 갖고 놀고 있었잖아! 소민이 놀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지금은 소민이 거야!”

그저 흔한 훈육의 한 장면이라 여겼지만, 만 3세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 일이 이불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억울함으로 남았나 보다.


아이가 잠든 뒤, 책상 앞에 앉아 생각했다.

‘오늘 ‘내 아이의 것’은 무엇이 있었나?’
‘양보하라 말하기 전에, 아이의 소유권을 인정해 준 적이 있었나?’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라 말하기 전에,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준 적은 있었나?’


네가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 미움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 혹여라도 너의 행동에 누군가 눈총을 보낼까 두려운 마음. 친구들이 널 싫어할까 봐 움츠러드는 마음. 하지만, 이 모든 마음은 내 것이다.

너의 마음은 1g도 담겨있지 않다.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사랑이 커질수록 내 안의 불안도 함께 자란다. 내 아이가 잘했으면 좋겠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바람 속엔 언제나 사랑이 깃들어 있다.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기대’라는 탈을 쓴다. 기대는 이내 잘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되고, 사명감은 '책임'으로 바뀌더니 이내 불안이 되어 나를 덮쳤다.


나는 오늘 아이를 사랑했는가? 아니면 관리했는가.
나는 오늘 아이를 믿었는가? 아니면 불안했는가.


정작 관리가 필요한 것은 불안한 나의 내면이었구나.


아이가 가진 것을 친구가 탐냈을 때, 이렇게 말할걸.

“맞아, 이건 네 거야. 네가 친구에게 직접 빌려주고 싶은 걸 골라볼래? 아직 빌려주고 싶지 않구나.
준비가 되면 엄마에게 말해줄래?”


혹은 다른 친구가 갖고 노는 걸 탐낼 때, 이렇게 말할걸.

“맞아, 정말 재밌어 보인다. 친구에게 몇 번 더 갖고 놀고 빌려줄 수 있는지 물어볼까?
빌려주기 싫어하는구나, 속상하겠다.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아니, 아니다. 그 모든 말을 하기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이가 지르는 소리에 놀랐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사람들은 네 아이를 미워하지 않아. 이제 불안에 떨고 있을 네 아이에게 네 사랑을 보여줄 시간이야.’


기대에 사랑이 밀려가지 않게,
책임에 사랑이 짓눌리지 않게.

되뇌고 되뇌는 불안한 나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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