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현 Apr 22. 2016

건강에 대한 자만심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회사에서 내 병가 소식을 접한 대부분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오부장 건강하지 않았어? 지하 헬스장에서 운동도 자주 하던데”
“맞아,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많이 안 마시잖아”
“어쩌다가…”

그렇다. 난 내가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크게 아팠던 기억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감기몸살로 이틀 결석해서 개근상을 못 타게 됐거나, 군대에서 이틀 동안 아파서 훈련을 열외 된 것이 기쁘기보다 서러웠던 기억이 손에 꼽힐 정도다. 난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 갖고 하는 운동은 모두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 농구가 좋아서 매일 근처 중학교 농구장으로 갔다. 혼자 슈팅 연습도 하고 친구, 형들과 시합했다. 해질 무렵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군대에서는 부대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예전 직장에서는 체육대회 때 축구, 피구, 발야구, 이어달리기 등 전 종목에 출전해서 전체 MVP를 받은 적도 있었다. 6년 전 연말정산 제출 서류 국세청 자료에는 내 의료비가 0원 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40년을 큰 탈없이 건강하게 살았던 내가 뇌종양이라니, 어쩌면 현재 건강하다고 평생 건강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런 나 자신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려고 누군가가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체격이 큰 편에 속했던지라 건강함을 당연하게 생각을 했고, 과음, 과로, 야근, 철야 등으로 내 몸을 '혹사'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혹사라는 생각도 못했다. 건강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거나 어깨가 결리거나 뒷목이 뻐근하면 '어? 갑자기 왜 이렇지' '내일이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내 몸에서 무수히 나오는 이상 징후 시그널에 대해 무덤덤했다. 내 몸에 신경 쓰기보다 내 업무에 신경 썼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술에 대한 거부감 vs. 술에 대한 합리화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좋아했고, 지방 출장도 많이 다니셨다.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친구들과 술 마시다 보니 소위 술을 잘못 배웠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술을 즐기셨고 이틀에 한 번 꼴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하셨다. 얼큰하게 취하시면 어린 나에게 매번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현아,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다리도 저리고 졸리기도 하는데 언제 끝나시려나' 귀에 못이 박힐 때까지 들어서 그랬을까? 그 당시에는 아버지께서 취중에 하는 잔소리로 들렸다. 그냥 술 드시는 것 자체가 싫었다. 술 안 드시면 아버지는 백 점 만점에 이백 점 짜리 아버지다. 자상하고 항상 내 편이었고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다. 하지만 아버지 입에 술만 들어가면 180도 돌변한다. 마치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처럼 변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비롯해 오씨 남자와 사는 모든 친척들이 이구동성으로 해준 말이 있다.
“오씨는 술 마시면 안 된다. 절대로” 당연히 나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고3 시절 그 흔한 합격기원 백일주도 안 마셨다. 그랬던 내가 대학 입학 후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술을 못 마시는 것보다 안 마시는 것이 낫겠다” 아버지처럼 술이 취하기 전에 스스로 조절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다. 한 번은 대학생 때 술이 잔뜩 취한 체 집에 새벽 2시에 도착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현아, 늦었으니 자라”

새벽에 들어온 아들을 앞에 두고 “너도 나처럼 술 마실래?”라고 일장 연설을 하셨다면 반항심에 더더욱 마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많이 드시잖아요?”라고 말대답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한마디가 백 마디 잔소리보다 더 무서웠고 진하게 남아있다.


마치 일부러 몸을 혹사시키는 것처럼 살았다


초등학교 피검사 결과, B형 간염 보균자 판정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균’ 이 포함되었으니 안 좋은 것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B형 간염 보균자는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지만 간 기능은 정상이며 간염 증상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대부분 정상인하고 다른 것이 없지만 일부 활동성 간염으로 진행되어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아버지께서 대학교 4학년 때 간경화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난 특히 조심해야 했다. 회사에서 종합검진을 할 때면 기본 검사 이외 대장 내시경과 같은 추가 검사를 하곤 했다. 검사 결과가 좋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과 동시에 나의 주량도 늘었다. 초년 시절에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자리 중간에 일어나는 것이 불편했다. 얼굴도 까무잡잡한 편이라 빨개지지도 않았다. 구석에 앉아서 상대방 이권 하는 대로 마시는 편이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졌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술기운을 빌리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와 연애시절, 데이트에 술을 마시면 어김없이 내가 먼저 취해서 잠이 들었다. 매일 저녁식사를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할 때도 있었다. 매일 술을 마시다가 하루 쉬면 허전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얼큰하게 취한 체로 사무실에 가서 일을 했다. 집중이 잘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아졌다.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새벽녘이 돼서야 업무가 정리됐다. 새벽에 클라이언트에 메일 보내고 퇴근하면 늦은 오전에 출근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모든 병이 마찬가지지만 B형 간염 보균자는 술을 멀리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로를 하면 안 되며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로 살았다. 술을 가까이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멀리했다. 운동량이 적어질수록 몸은 비대해졌다. 과체중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일로 생각했다. 마치 몸을 일부러 혹사시키는 것처럼 살았다. 내 몸을 아끼지 못했다. 내 몸에서 보내오는 시그널을 인식하지 못했다. 내 안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게 자라온 암세포


암세포는 사람의 몸에서 매일, 수백으로부터 수천 개가 발생한다. 1개의 암세포가 1센티의 크기( 약 10억 개의 암세포)가 되는데 10년 걸린다. 보통 암 1기부터 4기까지 나누는 암의 병기 구분은 종양의 진행 정도를 숫자로 구분하여 치료 방침 설정과 예후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하다. 역으로 계산해보면 20년 전부터 내 머리 속 암세포가 변이 되었다. 내가 그동안 마셨던 술과 안주, 고기와 밀가루, 야근과 철야 작업들이 내 머리 속 암세포가 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내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행동했을까? 끔찍하고 무섭다.


You canemploy someone to drive the car for you
너는 네 차를 운전해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Makemoney for you
돈을 벌어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Butcannot have someone to bear the sickness for you
하지만 너 대신 아파줄 사람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