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Bones(하늘의 뼈)]

제353장

by FortelinaAurea Lee레아

[Sky Bones(하늘의 뼈)]







제353장 — “백지의 시간에 피어난 문장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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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흰빛의 공간.
공간이라 부르기도, 시간이 흐른다 말하기도 어려운 곳.
모든 감각이 중립화된 이 차원은 ‘백지의 시간’이라 불렸다.
창조주조차 직접 발을 들인 적 없는,
세계 이전의 틈.

그곳에, 단 하나의 존재가 발을 내딛었다.

세란.



그녀의 발밑은 비어 있었지만,
걸을수록 무언가가 새겨졌다.
발자국마다 문장이 피어났고,
그 문장들이 모여 언어를 이루고,
언어는 마침내 ‘의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의미는 이름 없는 세계의 첫 서사(序詞)였다.



>> “나는... 존재한다. 나는... 기억한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뒤에는 피처럼 붉은 한 문장이 남았다.


>>“망각은 쉬움이다. 기억은 선택이다.”<<




그때, 공간이 흔들렸다.
백지의 시간 속으로, 또 하나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니할이었다.
그러나 예전의 니할이 아니었다.

하늘의 전쟁에서 패한 후,
세란의 기억에 품어진 망각의 그림자는
이제 이름을 버리고 다시 태어난 모습이었다.

이름도 없고, 의도도 없다.
다만 한 가지 본능,
-“모든 것을 백지로 되돌리겠다”-는 기초적인 갈망만이
그의 안에서 부글거리고 있었다.

“너는… 아직 남아 있었구나.”세란은 니할에게 말했다.

니할 (혹은 그 잔재)은 세란을 향해 말했다.

“나는 너의 두려움.
너의 가장 깊은, 가장 고요한 망각의 심연.
너조차 인정하지 않은 파편.”



세란은 눈을 감았다.

그녀의 내부에서 기억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었다.
고통의 재현도 아니었다.

‘증언’이었다.

그녀는 망각의 잔재 앞에 서서,
한 줄씩 이야기했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마지막 눈빛을 기억해.
바실의 손을, 루엔의 울음을,
켄슈이의 칼끝을…
너도 기억하지?”

그 잔재는 몸을 떨었다.
고요한 백지 속에서, 그가 처음으로 외쳤다.

“기억은 너를 멈추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고통에 굴복하게 만들 것이다!”



“아니.” 세란이 대답했다.
“기억은 나를 앞으로 걷게 만들었어.”


그 말과 함께,
세란의 발아래에서 문장 하나가 피어났다.


>>“나는 과거의 모든 이름을 증언하는 자.”<<



그 문장이 빛을 내자,
백지의 공간 전체에 서서히 색이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연한 회색,
그다음은 옅은 금빛,
그리고 마침내 수천 가지 기억의 색이

세계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 찰나, 잔재는 절규하며 흩어졌다.
더는 붙잡을 기억도 없었고,
더는 파괴할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란은 그 잔해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속삭였다.

“넌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의 일부가 될 거야.
나와 함께, ‘기억된 자’로 살아갈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백지였던 공간 위로 단 하나의 이름이 피어났다.


“하늘의 뼈.”


그것은 더 이상 유물도, 신의 도구도 아닌
새로운 서사의 첫 문장이었다.

세란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새로운 하늘이 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다음 장(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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